열쇠를 둘로 나누다.
그때까지 암호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비밀 열쇠를 미리 나눠 가져야 했습니다. 디피와 헬만은 누구에게나 공개하는 공개키와 나만 가진 개인키로 열쇠를 나누는 아이디어를 발표했습니다. 개인키로 서명한 메시지는 공개키로 누구나 검증할 수 있지만 개인키 없이는 위조할 수 없습니다. 블록체인에서 ‘내 돈’이란 결국 그 돈을 움직이는 서명을 만들 수 있는 개인키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1976년의 공개키 암호부터 사이퍼펑크, 사토시 나카모토, 이더리움, 그리고 제도권 편입까지
블록체인의 역사는 비트코인보다 30년 앞서 시작됩니다. 위조할 수 없는 서명, 데이터의 지문, 그리고 배신자가 섞인 컴퓨터들이 합의하는 방법이 이 시기에 수학으로 정리됩니다.
열쇠를 둘로 나누다.
그때까지 암호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비밀 열쇠를 미리 나눠 가져야 했습니다. 디피와 헬만은 누구에게나 공개하는 공개키와 나만 가진 개인키로 열쇠를 나누는 아이디어를 발표했습니다. 개인키로 서명한 메시지는 공개키로 누구나 검증할 수 있지만 개인키 없이는 위조할 수 없습니다. 블록체인에서 ‘내 돈’이란 결국 그 돈을 움직이는 서명을 만들 수 있는 개인키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소인수분해의 어려움을 자물쇠로.
리베스트, 샤미르, 애들먼은 큰 수를 소인수분해하기 어렵다는 성질로 공개키 암호와 디지털 서명을 실제로 구현했습니다. 이후 인터넷 보안의 표준이 됩니다.
수천 건의 데이터를 해시 하나로.
랄프 머클은 데이터들의 해시를 짝지어 다시 해시하고, 그것을 또 짝지어 해시하는 식으로 나무처럼 올라가 하나의 루트 해시로 요약하는 구조를 고안했습니다. 데이터가 하나라도 바뀌면 루트가 바뀌고, 특정 데이터가 들어 있다는 증명에는 log₂n개의 해시만 있으면 됩니다. 블록 하나에 담긴 수천 건의 거래를 요약하는 데 쓰입니다.
무엇에 서명하는지 모른 채 서명하는 은행.
데이비드 차움은 은행이 내용을 보지 못한 채 서명하게 만드는 은닉 서명을 고안했습니다. 은행이 발행했다는 사실은 증명되지만 누가 어디에 썼는지는 은행도 추적할 수 없는 익명의 디지털 현금이 가능해졌습니다.
배신자가 섞여 있을 때 어떻게 합의하는가.
여러 장군이 전령으로만 소통하며 도시를 포위하고 있고, 그중 일부는 거짓 메시지를 보내는 배신자입니다. 충성스러운 장군들이 같은 작전에 합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램포트 등은 일부가 고장 나거나 해킹당한 컴퓨터들이 합의하는 문제를 이렇게 비유하고, 전체 n명 중 배신자 f명을 견디려면 n ≥ 3f + 1, 즉 배신자가 3분의 1 미만이어야 함을 증명했습니다.
더 짧은 키로 같은 보안을.
코블리츠와 밀러가 독립적으로 타원곡선 위의 수학을 이용한 공개키 암호를 제안했습니다. RSA와 같은 보안 수준에서 키가 훨씬 짧습니다. 비트코인은 이 방식(곡선 이름 secp256k1)으로 서명합니다.
확실한 합의는 불가능하다.
피셔, 린치, 패터슨은 메시지가 언제 도착할지 보장할 수 없는 네트워크에서는 컴퓨터 하나만 멈춰도 확실하게 합의에 이르는 알고리즘이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이후의 실용적 해법들은 모두 가정을 하나씩 더해 이 벽을 피해 갑니다.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 안다는 것을 증명하다.
골드와서, 미칼리, 래코프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 사실 자체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상대에게 납득시킬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보였습니다. 당시엔 순수 이론이었지만 30년 뒤 블록체인의 프라이버시와 확장성을 푸는 핵심 기술이 됩니다.
익명의 디지털 현금 회사, 그리고 실용적 합의 알고리즘.
차움은 은닉 서명을 상품화한 회사 디지캐시를 세웠습니다. 같은 해 램포트는 일부 컴퓨터가 멈춰도 나머지가 합의를 이어가는 알고리즘 팍소스를 썼습니다(출판은 1998년). 오늘날 구글과 아마존의 데이터센터도 이런 알고리즘으로 돌아갑니다.
암호학으로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모여 블록체인의 직접적인 부품들을 하나씩 만듭니다. 해시 사슬, 작업증명, 분산 장부, 스마트 계약이 모두 이 10년 안에 나옵니다.
해시를 사슬로 엮다.
하버와 스토네타는 문서들의 해시를 시간 순서대로, 각각 바로 앞의 해시를 포함시켜 사슬처럼 연결하는 방법을 발표했습니다. 중간 기록 하나를 고치려면 그 뒤의 모든 기록을 고쳐야 합니다. 블록체인의 ‘체인’ 구조 그 자체이며, 비트코인 백서의 참고문헌 8개 중 3개가 이들의 논문입니다.
누구나 쓰는 강력한 암호, 그리고 국가의 수사.
필 짐머만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강력한 암호 프로그램 PGP를 공개하자, 강력한 암호를 무기로 분류해 수출을 막던 미국 정부가 그를 수사했습니다. 정부와 암호학자들의 이 대립을 암호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프라이버시는 직접 코드로 만든다.
에릭 휴즈, 티머시 메이, 존 길모어가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휴즈는 이듬해 「사이퍼펑크 선언」에서 프라이버시를 정부나 기업이 지켜주길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코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블록체인의 선구자들이 거의 모두 이 리스트에 모여 있었습니다.
풀기는 어렵고 검증은 쉬운 문제.
드워크와 나오르는 스팸 메일을 막으려고, 메일을 보낼 때마다 컴퓨터가 풀기는 어렵지만 검증은 쉬운 계산 문제를 풀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한 통에 1초면 일반 사용자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수백만 통을 보내는 스패머에겐 큰 비용이 됩니다.
사람 없이 실행되는 계약.
법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닉 서보는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그가 든 예는 자판기입니다. 돈을 넣으면 사람의 개입 없이 물건이 나옵니다.
수십만 부의 신문은 아무도 고칠 수 없다.
하버와 스토네타의 회사는 매주 해시 사슬의 최신 값을 뉴욕타임스 광고란에 실었습니다. 인쇄돼 퍼진 신문을 모두 고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사슬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블록체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금으로 뒷받침되는 디지털 화폐.
금으로 뒷받침되는 디지털 화폐 이골드가 시작돼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운영 회사가 있는 중앙화된 화폐였고, 훗날 그 점이 약점이 됩니다.
앞자리에 0이 나올 때까지.
영국 암호학자 애덤 백은 해시값의 앞자리에 0이 일정 개수 이상 나오는 입력을 찾게 하는 해시캐시를 만들었습니다. 무작정 대입해 보는 수밖에 없으니 계산과 전기가 들고, 검증은 해시 한 번이면 됩니다. 비트코인 채굴이 바로 이 방식입니다.
계산으로 만드는 돈, 모두가 나눠 가진 장부.
웨이 다이는 계산 작업으로 돈을 만들고 모든 참여자가 각자 장부를 갖는 익명 분산 화폐 b-money를 제안했습니다. 비슷한 무렵 닉 서보는 작업증명 결과물 자체를 금처럼 희소한 가치로 쓰는 비트골드를 구상했습니다(2005년 공개). 둘 다 구현되지는 않았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돈도 사라진다.
기술은 훌륭했지만 은행들과의 협상이 계속 틀어지며 디지캐시가 파산했습니다. 디지털 현금이 아무리 잘 설계돼도 운영하는 회사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배신자를 견디는 실용적인 합의.
카스트로와 리스코프는 비잔틴 장애를 견디면서도 실제로 빠르게 돌아가는 합의 알고리즘 PBFT를 발표했습니다. 다만 참여자가 누구인지 미리 아는 닫힌 시스템을 전제했습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네트워크에서 가짜 신원을 어떻게 막느냐는 마지막 벽이 남아 있습니다. 금융위기 한가운데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이미 있던 부품들을 처음으로 조립해 이 벽을 넘습니다.
비트코인의 지문 함수.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설계한 해시 함수 SHA-256이 표준으로 공개됐습니다. 입력이 한 글자만 바뀌어도 출력이 완전히 달라지고, 출력에서 입력을 역산할 수 없습니다. 비트코인은 블록 연결과 채굴 모두에 이 함수를 씁니다.
한 사람이 천 개의 신원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존 두서는 누구나 참여하는 네트워크에서 한 사람이 가짜 신원을 수천 개 만들어 투표를 장악하는 공격을, 다중인격을 다룬 책 제목을 따서 시빌 공격이라 불렀습니다. 중앙 기관 없이는 이를 막기 어렵다는 것도 보였습니다. 투표로 합의하는 기존 알고리즘이 열린 인터넷에서 쓰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재사용할 수 있는 작업증명.
할 피니는 작업증명 토큰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다시 쓸 수 있게 만든 RPOW를 구현했습니다. 다만 같은 토큰을 두 번 쓰는 것을 막으려면 신뢰할 수 있는 서버 하나가 필요했습니다.
정부가 닫을 수 있는 화폐.
미국 정부는 이골드가 자금 세탁에 쓰였다며 운영자들을 기소했고, 이골드는 2009년 사실상 문을 닫았습니다. 디지캐시의 파산과 함께, 중앙 운영자가 있는 디지털 화폐는 망하거나 닫힌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개인 간 전자 화폐 시스템.
리먼 브러더스 파산 6주 뒤인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의 인물이 암호학 메일링 리스트에 9쪽짜리 논문을 올렸습니다. 거래는 서명의 사슬이고, 거래들을 모은 블록은 이전 블록의 해시와 머클 루트를 담아 사슬로 이어지며, 새 블록을 붙이려면 해시캐시 방식의 작업증명을 풀어야 합니다. 새 부품은 거의 없었고, 30년 동안 쌓인 부품을 처음으로 조립한 설계였습니다.
IP 하나당 한 표가 아니라 CPU 하나당 한 표.
사토시는 ‘누가 투표하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계산에 에너지를 썼는가’로 바꿨습니다. 가짜 신원은 공짜지만 계산력은 실제 하드웨어와 전기가 있어야 하니 시빌 공격이 풀립니다. 참여자들은 누적 작업량이 가장 큰 체인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공격자라도 체인을 고쳐 쓰기보다 정직하게 채굴해 보상받는 편이 이익이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6블록이 지나면 사실상 확정.
백서 11절은 공격자가 z블록 뒤처진 상태에서 따라잡을 확률을 계산합니다. 확률론의 고전인 도박꾼의 파산 문제와 같은 구조로, 그 확률은 z가 늘수록 지수적으로 줄어듭니다. 공격자가 몰래 만드는 블록 수는 포아송 분포로 모델링했습니다. 전체 계산력의 10%를 가진 공격자가 6블록 뒤의 거래를 뒤집을 확률은 0.1%도 안 됩니다.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
1월 3일 사토시가 첫 블록을 만들고, 그날 영국 「더 타임스」 1면 기사 제목을 새겨 넣었습니다. 블록이 그날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증거이자 은행 구제에 대한 항의로 읽힙니다. 블록 보상은 50개에서 시작해 21만 블록(약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 총발행량은 등비급수에 따라 2,100만 개로 수렴합니다.
비트코인 실행 중.
1월 12일 사토시가 RPOW를 만든 할 피니에게 10비트코인을 보내며 첫 송금이 이뤄졌습니다. 10월에는 한 웹사이트가 채굴 전기료를 기준으로 처음 환율을 매겼는데, 1달러에 약 1,300비트코인이었습니다.
몇몇 암호학자의 실험이던 비트코인이 암시장과 거래소를 거쳐 하나의 산업이 됩니다. 창시자는 사라지고, 수많은 복제 코인이 나오고, 채굴은 공장이 됩니다. 그리고 블록체인을 장부가 아니라 컴퓨터로 보려는 구상이 등장합니다.
1만 비트코인에 피자 두 판.
5월 22일 프로그래머 라즐로 하니예츠가 1만 비트코인으로 피자 두 판을 샀습니다. 비트코인으로 실물을 산 첫 사례로 알려져 지금도 ‘비트코인 피자 데이’로 기념됩니다.
고칠 수 없는 장부를 고치다.
8월 코드의 정수 오버플로 버그로 누군가 1,840억 개의 비트코인을 만들어냈습니다. 몇 시간 만에 수정된 코드가 배포되고 문제의 블록은 체인에서 제외됐습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장부라도 사람들이 어떤 코드를 실행할지 합의하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입니다.
첫 대규모 실사용은 암시장이었다.
다크웹에서 비트코인으로만 결제하는 마약 거래 사이트 실크로드가 문을 열었습니다. 운영자 로스 울브리히트는 2013년 체포돼 종신형을 받았다가 2025년 사면됐습니다. 그런데 모든 거래가 영원히 공개되는 블록체인은 실제로는 현금보다 추적하기 쉬워서, 이후 많은 범죄자가 블록체인 분석으로 잡혔습니다.
다른 일로 옮겨갔다.
사토시는 4월 개발자들에게 이메일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초기에 채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 100만 개의 비트코인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체포하거나 압박할 리더가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비트코인의 장점이 됐습니다.
비트코인 코드를 복사하고 바꾸다.
탈중앙 도메인 이름 시스템을 시도한 네임코인이 비트코인의 첫 포크로 나왔고, 다른 해시 함수를 쓴 라이트코인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듬해 은행 간 송금을 노린 리플이, 2013년에는 시바견 밈을 농담으로 만든 도지코인이 나옵니다.
계산 대신 지분으로.
서니 킹과 스콧 네이들이 만든 피어코인은 블록을 만드는 권리를 계산력뿐 아니라 코인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로도 나눠 주는 지분증명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전기를 태우지 않고도 시빌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10년 뒤 이더리움의 전환으로 이어집니다.
해시 계산만 하는 칩.
CPU에서 그래픽카드로 옮겨 가던 채굴이, 비트코인 해시 계산만을 위해 설계된 전용 칩(ASIC)이 나오면서 거대한 산업이 됐습니다. 값싼 전기가 있는 중국에 채굴 시설이 몰렸습니다.
백서로 투자금을 모으다.
계산기에서 범용 컴퓨터로.
열아홉 살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이 송금이라는 앱 하나만 돌리는 계산기라면, 블록체인 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든 실행하는 범용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 서보가 상상한 스마트 계약을 실제로 구현할 플랫폼이었습니다.
개인키가 없으면 내 코인이 아니다.
원래 카드게임 카드 거래소로 만들어졌다가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70% 이상을 처리하게 된 마운트곡스가, 해킹과 부실 관리로 약 85만 개의 비트코인을 잃고 파산했습니다. 탈중앙 네트워크 위에 세운 중앙화된 거래소는 옛날 은행과 똑같이 위험하다는 것을 처음 배웠습니다.
1,800만 달러어치의 비트코인.
이더리움 팀은 이더를 미리 팔아 약 1,800만 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모았습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토큰을 팔아 개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의 본보기가 됐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달러.
1코인을 1달러에 고정하고 그만큼 준비금을 쌓아 둔다는 스테이블코인 테더가 등장했습니다. 변동성이 큰 코인 사이에서 거래소들이 달러 대신 쓰는 기준 통화가 되며 가장 많이 거래되는 코인이 됩니다. 준비금이 실제로 충분한지는 오랫동안 논란이었고, 2021년 뉴욕주 검찰과 벌금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더리움이 블록체인을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컴퓨터로 바꾸고, 누구나 토큰을 찍어 돈을 모으는 거품이 일어납니다. 해킹과 내전 같은 성장통 속에서 ‘코드가 곧 법인가’라는 질문이 거듭 시험받습니다.
전 세계가 함께 돌리는 하나의 컴퓨터.
7월 30일 이더리움이 출범했습니다. 수천 대의 노드가 같은 프로그램을 똑같이 실행해 결과에 합의합니다(EVM). 언어가 튜링 완전해서 무한 루프로 네트워크를 멈출 수 있고, 정지 문제 때문에 이를 미리 판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더리움은 모든 연산에 ‘가스’라는 수수료를 매기고 가스가 바닥나면 실행을 멈추게 해, 이 문제를 경제학으로 풀었습니다.
몇십 줄로 만드는 토큰, 그리고 ‘비트코인 말고 블록체인’.
ERC-20 표준이 제안되면서 누구나 몇십 줄의 코드로 자기 토큰을 발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같은 해 리눅스 재단의 하이퍼레저처럼 허가받은 참여자만 쓰는 기업용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시작됐습니다. 대부분은 모두가 믿는 관리자가 이미 있다면 보통 데이터베이스가 더 빠르고 싸다는 교훈을 남기고 끝납니다.
코드가 허용했다면 합법인가.
이더리움 위에 투자 펀드를 통째로 스마트 계약으로 만든 더 다오가 당시 이더리움의 약 14%를 모았습니다. 6월, 출금 함수가 잔고를 갱신하기 전에 외부 호출을 하는 재진입 버그로 약 360만 이더가 빠져나갔습니다. 다수는 7월 하드포크로 역사를 고쳐 돈을 되돌렸고, 이를 거부하고 원래 체인을 이어간 쪽이 이더리움 클래식이 됐습니다.
영지식 증명의 첫 실전.
프라이버시 코인 지캐시가 영지식 증명(zk-SNARK)으로 보낸 사람, 받는 사람, 금액을 숨기면서도 거래가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게 했습니다. 1985년의 순수 이론이 처음 실전에 쓰였습니다.
CEO 없는 네트워크의 내전.
비트코인은 블록 크기 제한 때문에 초당 약 7건의 거래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블록을 키우자는 쪽과, 기본 체인은 작고 안전하게 두고 위에 별도 계층을 만들자는 쪽이 2년 넘게 싸웠습니다. 8월 후자의 개선안 세그윗이 적용됐고, 반대한 쪽은 블록을 키운 비트코인 캐시로 갈라져 나갔습니다.
백서 한 장으로 수천억 원.
누구나 토큰을 발행해 전 세계에서 투자금을 모을 수 있게 되자 ICO 열풍이 불었습니다. EOS는 1년간 약 40억 달러를 모았지만 상당수 프로젝트는 실체가 없거나 사기였습니다.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더 다오 토큰이 증권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고, 9월 중국은 ICO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고양이 게임이 멈춰 세운 네트워크.
블록체인 위에서 고양이 캐릭터를 사고팔고 교배하는 게임 크립토키티가 인기를 끌자 이더리움 전체가 느려지고 수수료가 폭등했습니다. 확장성 문제가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같은 달 메이커다오는 은행 대신 스마트 계약이 이더를 담보로 잡고 달러 가치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 다이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바꿔도 주가가 세 배.
12월 비트코인은 2만 달러 가까이 올랐다가 이듬해 80% 넘게 폭락하며 ‘크립토 겨울’이 시작됐습니다. 같은 달 미국의 아이스티 회사가 이름을 ‘롱 블록체인’으로 바꾸자 주가가 하루 만에 세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하나뿐인 디지털 소유, 그리고 체인 위의 결제 계층.
토큰마다 고유한 NFT 표준 ERC-721이 확정됐습니다. 디지털 파일은 무한히 복사할 수 있지만 ‘원본 소유자’ 기록은 하나만 남길 수 있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같은 해 비트코인 위에서 즉각적인 소액 결제를 처리하는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출범했습니다.
호가창을 공식 하나로.
유니스왑은 주문을 맞춰주는 거래소 없이, 두 토큰을 넣어둔 풀에서 x × y = k라는 공식으로 가격을 정합니다. 한 토큰을 빼면 그 양이 줄어든 만큼 가격이 자동으로 오릅니다. 이 자동화된 마켓 메이커(AMM)는 수백 년 된 증권거래소의 호가창 구조를 수학 공식 하나로 대체했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초단타 매매.
코넬 대학 연구자들은 블록을 만드는 사람이 거래 순서를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거래 직전에 끼어들어 이익을 빼먹는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이를 채굴자 추출 가능 가치(MEV)라고 부릅니다. 월스트리트의 속도 경쟁이 블록체인 위에서 그대로 재현됐습니다.
거대 플랫폼의 화폐에 놀란 국가들.
페이스북이 수십억 사용자를 위한 스테이블코인 리브라를 발표하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2022년 접혔지만, 국가들이 디지털 화폐와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서두르는 계기가 됐습니다.
탈중앙화 금융과 NFT가 폭발하고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찍은 뒤, 블록체인 위에 세운 중앙화된 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집니다. 그 와중에 이더리움은 지분증명으로 엔진을 바꿉니다.
레고처럼 연결되는 금융.
대출 플랫폼 컴파운드가 사용자에게 자기 토큰을 보상으로 나눠주기 시작하자,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보상을 극대화하는 이자 농사가 폭발했습니다. 서로 연결된 디파이 프로그램 위에서 플래시 론도 가능해졌습니다. 한 거래 안에서 담보 없이 거액을 빌렸다가 같은 거래 안에서 갚기만 하면 되는 대출로, 공격자들은 이걸로 순간적으로 거대한 자금을 동원해 가격을 조작했습니다.
회사 금고에 비트코인을.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회사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에는 이를 따라 비트코인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상장 기업이 크게 늘어납니다.
6,930만 달러짜리 JPEG.
3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NFT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원숭이 그림 NFT가 유명인들 사이에 유행했고, 11월에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4,700만 달러 가까이 모아 미국 헌법 초판 사본을 사려 한 컨스티튜션다오가 경매에서 졌습니다.
나스닥 상장, 법정화폐, 그리고 채굴의 대이동.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샀고,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상장했고,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했습니다. 중국이 채굴과 거래를 전면 금지하자 채굴 시설은 미국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옮겨 갔습니다. 11월 비트코인은 약 6만 9천 달러로 당시 최고가를 기록했고, 채굴의 에너지 소비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습니다.
비싼 이더리움 밖으로.
이더리움 수수료가 치솟자 더 빠르고 싼 솔라나, 아발란체, BNB 체인 같은 경쟁 블록체인이 성장했습니다. 서로 다른 체인 사이에 자산을 옮기는 브리지도 생겼는데, 거대한 금고 역할을 하면서도 보안이 약해 가장 큰 공격 대상이 됩니다.
두 체인의 가장 큰 업그레이드.
8월 이더리움은 거래 수수료의 기본 몫을 채굴자에게 주지 않고 소각하는 EIP-1559를 적용해, 네트워크가 붐빌수록 이더 공급이 줄어드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11월 비트코인은 세그윗 이후 가장 큰 업그레이드인 탭루트를 활성화해, 여러 서명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슈노르 서명을 도입하고 복잡한 거래 조건을 더 싸고 사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6억 2천만 달러, 그리고 북한.
담보 없는 1달러의 죽음의 소용돌이.
테라의 스테이블코인 UST는 실제 담보 없이 짝을 이룬 코인 루나와의 교환으로 1달러를 유지했습니다. 이 구조는 루나의 가치를 사람들이 믿을 때만 작동합니다. 5월 대규모 인출로 UST가 흔들리자 루나가 대량 발행되며 폭락했고, 그것이 UST의 신뢰를 더 떨어뜨리며 며칠 만에 400억 달러 넘는 가치가 증발했습니다. 스리 애로우즈 캐피털, 셀시어스, 보이저가 연쇄 파산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코드를 제재하다.
8월 미국 재무부는 이더리움 거래의 출처를 섞어 추적을 어렵게 하는 스마트 계약 토네이도 캐시를 제재 명단에 올렸습니다. 북한 해커들의 자금 세탁에 쓰였다는 이유였습니다. 2024년 미국 항소법원은 누구도 소유하거나 바꿀 수 없는 스마트 계약은 제재 대상이 되는 재산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제재는 2025년 해제됐습니다. 개발자들은 따로 형사 재판을 받았습니다.
운행 중인 비행기의 엔진을 바꾸다.
9월 15일 이더리움이 작업증명에서 지분증명으로 전환했습니다. 계산 경쟁 대신 이더를 담보로 맡긴 참여자들이 블록을 제안하고 검증하며, 부정행위를 하면 담보를 몰수당합니다. 시빌 공격을 막는 비용이 전기에서 돈으로 바뀌었고, 에너지 사용량은 99.9% 이상 줄었습니다.
고객 돈을 몰래 쓴 거래소.
세계 3위권 거래소 FTX가 고객 예치금을 창업자의 투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로 빼돌려 쓴 사실이 드러나며 파산했습니다.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2024년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022년의 붕괴는 대부분 블록체인 자체가 아니라 그 위의 중앙화된 회사들에서 일어났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데이터베이스면 충분했다.
호주증권거래소가 2017년부터 추진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백지화하고 약 2억 5천만 호주달러를 손실 처리했습니다. 머스크와 IBM의 무역 물류 블록체인 트레이드렌즈도 문을 닫았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참여자가 없다면 블록체인의 비싼 합의 비용은 값을 하지 못합니다.
붕괴 뒤에 규제와 기관이 들어옵니다. 비트코인은 ETF와 국가 비축을 통해 제도권 자산이 되고, 기술은 레이어 2와 영지식 증명으로 확장성 문제를 우회합니다.
비트코인 위의 NFT.
케이시 로다머는 세그윗과 탭루트로 넓어진 공간을 이용해 사토시 단위의 비트코인 하나하나에 이미지나 텍스트를 새기는 오디널스를 공개했습니다. 비트코인 위에서 NFT와 토큰 발행이 붐을 이루며 수수료가 치솟았고, 비트코인은 돈으로만 써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논쟁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증권인가 아닌가.
7월 미국 법원은 리플 사건에서 기관 투자자에게 판 토큰은 증권이지만 거래소에서 일반인에게 팔린 토큰은 그렇지 않다는 일부 판결을 내렸습니다. 11월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는 자금세탁 방지 위반으로 43억 달러의 벌금에 합의했고, 창업자 창펑 자오는 징역 4개월을 살았습니다.
증권 계좌로 사는 비트코인.
1월 미국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면서 기관 자금이 대거 들어왔습니다. 7월에는 이더리움 현물 ETF도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4월에는 네 번째 반감기가 있었고, 유럽연합은 연말부터 암호자산 시장 규제(MiCA)를 전면 시행했습니다.
메인 체인 밖에서 처리하고 요약만 기록.
이더리움은 메인 체인을 빠르게 만드는 대신 거래를 바깥(레이어 2)에서 처리하고 결과만 기록하는 롤업을 택했습니다. 결과가 맞다고 가정하고 이의 제기를 받는 옵티미스틱 롤업과, 영지식 증명으로 정확성을 증명하는 ZK 롤업이 있습니다. 3월 업그레이드로 레이어 2가 데이터를 싸게 저장할 공간(블롭)이 생기며 수수료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사토시가 아니다.
스스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해 온 호주 출신 컴퓨터 과학자 크레이그 라이트에 대해, 영국 고등법원은 그가 사토시가 아니며 백서의 저자도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사토시의 정체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소송 철회, 전략 비축, 스테이블코인법.
새 행정부 출범 뒤 SEC가 암호화폐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 다수를 철회했고, 3월 행정명령으로 전략 비트코인 비축이 만들어졌습니다.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이 서명됐고, 하원은 암호자산 시장 구조를 정하는 클래리티법을 294 대 134로 통과시켰습니다.
역사상 최대의 암호화폐 도난.
12만 6천 달러, 그리고 하루 190억 달러.
10월 비트코인이 약 12만 6천 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며칠 뒤인 10월 10일에는 하루 만에 약 190억 달러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강제 청산되는 역사상 최대의 청산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위험자산처럼 움직이는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2025년 10월 고점보다 절반 넘게 떨어져 6월에는 6만 달러 안팎까지 내려갔다가 일부 회복했습니다. 과거 고점 뒤의 하락이 매번 75%를 넘었던 것보다는 완만하지만, 금리와 인플레이션 같은 거시 경제 요인에 크게 흔들리며 다른 위험자산과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49 대 50.
하원을 통과한 클래리티법은 5월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했지만, 9월 15일 본회의 토론을 열기 위한 절차 투표에서 49 대 50으로 부결됐습니다. 60표가 필요한 관문이었습니다. 법안은 다시 시도할 수 있지만 미국의 암호자산 시장 규제는 다시 불확실해졌습니다.
1970년대 암호학 위에 세운 집.
미래의 양자 컴퓨터가 쇼어 알고리즘으로 타원곡선 암호를 깰 수 있다는 위협에 대비해, 블록체인을 양자 내성 서명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커지고 있습니다. 50년 전 수학 위에 세운 장부가 다음 세대의 수학과 물리학 앞에서 다시 기초 공사를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