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로 수표를 자동 계산하는 기계.
찰스 배비지는 사람이 손으로 계산하던 수학표에 오류가 많은 것을 보고, 기계가 다항식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차분기관’을 설계했습니다. 이후 구상한 ‘해석기관’은 메모리, 연산 장치, 조건 분기까지 갖춘 현대 컴퓨터의 설계와 놀랄 만큼 닮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배비지의 차분기관부터 오늘의 AI 칩까지
전기도 트랜지스터도 없던 시절, 몇몇 사람들은 톱니바퀴와 천공 카드로 계산을 자동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자들은 ‘계산’이란 무엇인지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톱니바퀴로 수표를 자동 계산하는 기계.
찰스 배비지는 사람이 손으로 계산하던 수학표에 오류가 많은 것을 보고, 기계가 다항식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차분기관’을 설계했습니다. 이후 구상한 ‘해석기관’은 메모리, 연산 장치, 조건 분기까지 갖춘 현대 컴퓨터의 설계와 놀랄 만큼 닮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
해석기관에 대한 논문을 번역하며 덧붙인 주석에서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절차를 적었습니다. 그녀는 이 기계가 숫자뿐 아니라 음악 같은 기호도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인구조사 집계를 기계로.
허먼 홀러리스는 구멍 뚫린 카드에 정보를 담고 전기로 읽어 집계하는 기계를 만들어 1890년 미국 인구조사의 집계 시간을 크게 줄였습니다. 그의 회사는 합병을 거쳐 1924년 IBM이 됩니다.
앨런 튜링, ‘계산 가능하다’는 것의 정의.
논문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에서 테이프와 규칙표만 가진 가상의 기계로 모든 계산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하나의 기계가 다른 모든 기계를 흉내 낼 수 있다는 ‘범용 튜링 기계’ 개념은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입니다.
0과 1의 논리를 전기 회로로.
MIT 대학원생 클로드 섀넌은 석사 논문에서 불 대수로 전기 스위치 회로를 설계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석사 논문’으로 불립니다.
전쟁이 계산 수요를 폭발시켰습니다. 암호 해독과 탄도 계산을 위해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기계들이 만들어집니다.
콘라트 추제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계산기.
독일의 추제가 계전기로 만든 Z3는 프로그램으로 제어되는 완전 자동 디지털 계산기였습니다.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되어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독일군 암호를 깬 영국의 전자식 기계.
블레츨리 파크에서 진공관 약 1,600개로 만든 Colossus는 독일 최고사령부의 암호 통신 해독에 쓰였습니다. 전쟁 후 수십 년간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습니다.
18,000개의 진공관, 30톤의 계산기.
미국 육군의 탄도 계산을 위해 만든 범용 전자식 컴퓨터로, 이듬해 공개되며 ‘전자 두뇌’로 불렸습니다. 프로그램을 바꾸려면 케이블과 스위치를 며칠에 걸쳐 다시 연결해야 했고, 그 일은 주로 여성 프로그래머 6명이 맡았습니다.
프로그램도 데이터처럼 메모리에.
존 폰 노이만의 EDVAC 보고서 초안은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저장하고 꺼내 실행하는 구조를 정리했습니다. 케이블을 다시 꽂는 대신 메모리 내용만 바꾸면 되는 이 방식은 지금도 거의 모든 컴퓨터의 기본 구조입니다.
벨 연구소, 진공관을 대체할 스위치를 발명.
바딘, 브래튼, 쇼클리가 반도체로 만든 증폭·스위칭 소자. 진공관보다 작고, 전력을 덜 쓰고, 잘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계전기 사이에 낀 진짜 나방.
하버드 Mark II가 오작동하자 그레이스 호퍼 팀이 계전기에서 나방을 찾아내 기록지에 붙였습니다. ‘버그’라는 말은 그 전부터 쓰였지만, 이 기록지는 가장 유명한 첫 실제 사례로 남았습니다.
메모리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처음 실행하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소형 실험 기계가 메모리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폰 노이만 구조가 실제로 작동함을 보인 첫 사례입니다.
연구실의 실험 기계가 기업과 정부에 팔리기 시작하고, 기계어 대신 사람의 말에 가까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등장합니다.
미국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중 하나.
인구조사국에 처음 납품됐고, 1952년 미국 대선에서 개표 초반에 아이젠하워의 압승을 정확히 예측해 유명해졌습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식품 회사 라이언스가 만든 LEO가 급여 계산을 시작합니다.
그레이스 호퍼, 기계가 프로그램을 번역하게 하다.
호퍼는 사람이 쓴 명령을 기계어로 바꿔주는 A-0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는 산수만 할 수 있다며 믿지 않았습니다.
IBM RAMAC, 냉장고 두 대 크기의 5MB.
50장의 원판에 약 5MB를 저장했고, 원하는 데이터를 순서대로 감지 않고 바로 꺼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손톱만 한 메모리 카드에 그 수십만 배가 들어갑니다.
과학자를 위한 첫 대중적 고급 언어.
IBM의 존 배커스 팀이 만든 FORTRAN은 수식에 가까운 문장으로 프로그램을 쓰게 했고, 사람이 짠 기계어만큼 빠른 코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상 예측과 물리 시뮬레이션에서는 지금도 쓰입니다.
여러 트랜지스터를 칩 하나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가 처음 시연했고, 이듬해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가 대량 생산에 적합한 실리콘 평면 방식을 내놓았습니다. 노이스는 훗날 인텔을 공동 창업합니다.
은행과 기업을 위한 ‘영어 같은’ 언어.
그레이스 호퍼의 영향을 받아 업계와 미국 정부가 함께 만든 사무용 언어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은행과 공공기관의 핵심 시스템 상당수가 COBOL로 돌아갑니다.
기업 전산실에 거대한 컴퓨터가 들어서고, 여러 사람이 한 컴퓨터를 나눠 쓰는 법이 생겨납니다. 컴퓨터는 사람을 달에 보내는 데도 쓰입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컴퓨터를.
MIT의 CTSS는 컴퓨터의 시간을 아주 잘게 나눠 여러 사용자가 각자의 단말기에서 동시에 쓰는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결과를 몇 시간씩 기다리던 일괄 처리 방식에서 대화형 컴퓨팅으로 넘어가는 시작이었습니다.
MIT 학생들이 만든 우주 전투 게임.
호환되는 컴퓨터 ‘제품군’.
작은 모델에서 큰 모델까지 같은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게 하면서 기업 전산화의 표준이 됐습니다. IBM은 이 프로젝트에 회사의 운명을 걸 만큼 막대한 돈을 투자했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칩 속 트랜지스터 수는 꾸준히 두 배로.
고든 무어는 집적회로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매년 두 배로 늘어나고 있다고 관찰했습니다(이후 2년마다로 수정). 이 예측은 반도체 업계가 스스로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되어 반세기 넘게 이어졌습니다.
냉장고만 한 ‘미니’컴퓨터.
DEC의 PDP-8은 약 1만 8천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연구실과 공장이 자기만의 컴퓨터를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메인프레임만 있던 시장에 미니컴퓨터라는 새 범주가 생깁니다.
더글러스 엥겔바트, 미래의 컴퓨터를 시연하다.
90분 동안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창 화면, 화상회의, 실시간 공동 편집을 한꺼번에 보여줬습니다. 같은 해 노이스와 무어는 인텔을 창업합니다.
달에 간 컴퓨터, 그리고 반세기를 산 운영체제.
아폴로 11호의 유도 컴퓨터는 지금 기준으로 아주 작은 메모리로 달 착륙을 이끌었고, 소프트웨어 팀을 이끈 마거릿 해밀턴은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말을 널리 알렸습니다. 같은 해 벨 연구소의 톰슨과 리치는 UNIX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CPU와 메모리가 칩 하나에 들어가고,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들이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옵니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표 계산을 합니다.
인텔 1103, 자기 코어 메모리를 밀어내다.
작은 축전기에 전하를 담아 정보를 기억하는 반도체 메모리 칩입니다. 자석 고리를 엮어 만들던 코어 메모리보다 작고 쌌고, 인텔을 메모리 회사로 키웠습니다.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일본 계산기 회사 비지콤을 위해 만든 칩으로, CPU 전체를 손톱만 한 칩 하나에 담았습니다. 같은 해 IBM은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내놓습니다.
데니스 리치, UNIX를 다시 쓰다.
UNIX가 C로 다시 쓰이면서 다른 기계로 옮기기 쉬워졌습니다. C와 UNIX는 이후 리눅스, macOS, 안드로이드, iOS의 뿌리가 되고, C 문법은 C++, Java, JavaScript로 이어집니다.
오락실을 점령한 탁구 게임.
마우스, 창, 아이콘, 네트워크를 다 갖춘 컴퓨터.
제록스 PARC 연구소의 Alto는 그래픽 화면과 마우스, 이더넷 연결을 갖춘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이었습니다. 상업적으로 팔리지는 않았지만, 몇 년 뒤 이곳을 방문한 스티브 잡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조립식 컴퓨터 키트, 그리고 그 위의 BASIC.
잡지 표지에 실린 Altair 8800에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BASIC 인터프리터를 만들어 팔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작됐습니다. 취미가들의 모임인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는 애플의 창업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Apple II, Commodore PET, TRS-80.
‘1977 트리니티’로 불리는 완제품 개인용 컴퓨터 세 대가 한 해에 나오며 시장이 열렸습니다. 특히 컬러 그래픽을 갖춘 Apple II는 학교와 가정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x86 시대의 시작.
인텔의 16비트 프로세서 8086의 명령어 체계는 후속 칩들로 이어지며 ‘x86’이 됩니다. 40년이 넘은 지금도 대부분의 PC와 서버가 이 혈통의 칩을 씁니다.
컴퓨터를 사게 만든 첫 ‘킬러 앱’.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숫자 하나를 바꾸면 표 전체가 다시 계산됐습니다. 회계사와 경영자들이 이 프로그램 하나를 쓰기 위해 Apple II를 샀습니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이고, 명령어 대신 마우스로 클릭합니다. 운영체제를 자유롭게 나누자는 운동도 시작됩니다.
‘PC’라는 말을 표준으로 만든 기계.
IBM이 시판 부품과 외부 운영체제로 빠르게 만든 PC는 개방형 구조 덕분에 수많은 호환 기종을 낳았습니다. 운영체제를 공급한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시대의 최대 승자가 됩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컴퓨터 모델.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그래픽·사운드로 1,000만 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세대의 프로그래머와 게임 개발자가 이 컴퓨터로 처음 코딩을 배웠습니다.
리처드 스톨먼,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쓰고, 고치고, 나눌 수 있는 UNIX 호환 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GNU의 도구들과 GPL 라이선스는 훗날 리눅스와 결합해 오픈소스 세계의 기반이 됩니다.
“1984년이 『1984』처럼 되지 않을 이유.”
슈퍼볼 광고와 함께 등장한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대중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화면 덕분에 데스크톱 출판이라는 새 산업도 생겨납니다.
PC의 운영체제, 그리고 미래 모바일의 칩.
마이크로소프트가 Windows 1.0을 내놓았고, 영국의 에이콘은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쓰는 ARM 프로세서의 첫 칩을 만들었습니다. ARM은 25년 뒤 거의 모든 스마트폰의 두뇌가 됩니다.
PC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인터넷과 함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식도 바뀝니다. 그래픽 칩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프로세서가 등장합니다.
핀란드 대학생의 취미 프로젝트.
리누스 토르발스가 “그냥 취미”라며 공개한 운영체제 커널에 전 세계 개발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서버, 슈퍼컴퓨터, 안드로이드 폰이 리눅스로 움직입니다.
PC 성능 경쟁, 그리고 그래픽 칩 회사의 탄생.
인텔은 숫자 대신 이름을 붙인 Pentium을 내놓으며 ‘인텔 인사이드’ 브랜드를 키웠습니다. 같은 해 젠슨 황 등이 3D 그래픽 칩을 만드는 NVIDIA를 창업합니다.
시작 버튼과 함께 온 PC 대중화.
출시 날 매장 앞에 줄을 설 만큼 화제가 됐고, 시작 메뉴와 작업 표시줄은 지금까지 Windows의 기본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PC가 ‘가전제품’처럼 쉬워졌습니다.
주머니 속 개인 비서.
플로피 디스크를 버린 반투명 컴퓨터.
파산 직전의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일체형 컴퓨터. 플로피 드라이브를 빼고 USB를 전면에 내세워 USB가 표준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GPU’라는 이름, 그리고 2000년 문제.
NVIDIA는 3D 연산을 전담하는 GeForce 256을 ‘세계 최초의 GPU’로 소개했습니다. 같은 시기 전 세계는 연도를 두 자리로 저장한 프로그램들이 2000년을 1900년으로 착각할 ‘Y2K’ 문제를 고치느라 바빴습니다.
클럭 속도 경쟁이 한계에 부딪히자 코어 수를 늘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컴퓨터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UNIX 위의 맥, 오래 산 윈도우.
애플은 UNIX 기반의 Mac OS X로 운영체제를 새로 만들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XP는 10년 넘게 쓰인 가장 장수한 윈도우 중 하나가 됐습니다.
“주머니 속 1,000곡.”
속도 대신 코어를, 그리고 코드 관리의 표준.
발열 때문에 클럭 속도를 더 올리기 어려워지자 인텔과 AMD는 칩 하나에 코어 두 개를 넣은 프로세서를 내놓았습니다. 같은 해 리누스 토르발스는 리눅스 개발을 위해 분산 버전 관리 도구 Git을 만들었습니다.
전화기, 아이팟, 인터넷 기기를 하나로.
누구나 앱을 만들어 파는 시장.
애플이 앱스토어를 열고, 구글이 오픈소스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내놓았습니다. 수많은 제조사가 안드로이드를 채택하며 스마트폰이 빠르게 대중화됩니다.
스마트폰이 PC보다 많이 팔리고, 반도체는 3차원으로 쌓아 올립니다. AI를 위한 전용 칩과 양자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PC와 스마트폰 사이의 새 기기.
35달러짜리 신용카드 크기 컴퓨터.
메모리를 층층이 쌓아 올리다.
평면에 더 작게 새기는 데 한계가 오자, 저장 셀을 수직으로 쌓는 3D 낸드가 처음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로 SSD가 싸지고 커져 하드 디스크를 빠르게 대체합니다.
AI 계산만을 위한 전용 칩.
구글은 데이터센터에서 이미 쓰고 있던 신경망 전용 칩 TPU를 공개했습니다. 범용 CPU와 GPU를 넘어 특정 작업에 맞춘 칩을 만드는 흐름이 본격화됩니다.
CPU 설계 자체에 숨어 있던 보안 구멍.
속도를 높이려고 미리 실행하는 기법(추측 실행)이 다른 프로그램의 비밀 데이터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지난 20년간 만들어진 거의 모든 프로세서가 영향을 받았습니다.
구글 Sycamore,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몇 분 만에.
구글은 53큐비트 양자 프로세서로 특정 계산에서 기존 슈퍼컴퓨터를 압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용성과 비교 방식에 대한 반론도 있었지만, 양자 컴퓨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습니다.
생성형 AI가 GPU 수요를 폭발시키면서 반도체가 국가 전략 산업이 됩니다. 칩은 더 작게, 더 특화되게, 더 많이 만들어집니다.
맥이 스마트폰의 칩을 품다.
애플은 인텔 칩을 버리고 아이폰 칩에서 출발한 ARM 기반 M1을 맥에 넣었습니다. 높은 성능과 긴 배터리 시간으로 노트북의 기준을 바꿨습니다.
칩이 없어 자동차 공장이 멈추다.
팬데믹으로 전자기기 수요가 몰리고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자동차, 가전 등 거의 모든 산업이 칩 부족을 겪었습니다. 각국은 반도체를 안보 문제로 보기 시작합니다.
초당 100경 번 계산, 그리고 반도체 국가 전략.
미국 오크리지 연구소의 Frontier가 처음으로 공식 엑사스케일(초당 10^18회 연산) 성능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해 미국은 자국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CHIPS법을 통과시켰습니다.
NVIDIA, 시가총액 1조 달러 돌파.
생성형 AI 학습에 필요한 GPU 주문이 폭주하면서 NVIDIA가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GPU 옆에 붙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도 귀한 부품이 됩니다.
Vision Pro, 그리고 AI를 위한 PC.
애플은 눈앞에 화면을 띄우는 Vision Pro를 ‘공간 컴퓨터’로 내놓았고, PC 업계는 AI 연산 전용 칩(NPU)을 넣은 ‘AI PC’를 앞세웠습니다. 같은 해 NVIDIA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됩니다.
큐비트를 늘릴수록 오류가 줄어들다.
구글의 양자 칩 Willow는 큐비트를 더 많이 묶을수록 오류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임계값 이하’ 오류 정정을 보였습니다. 쓸모 있는 양자 컴퓨터로 가는 핵심 관문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