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는 회계에서 시작됐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곡물과 양의 수를 나타내던 작은 점토 토큰들이 점토판에 그 모양을 눌러 새기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문자와 숫자가 생겼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수메르의 신전과 궁전은 노동자에게 보리를 배급하고, 농민에게 씨앗을 빌려주고, 모든 것을 점토판에 기록했습니다.
신전의 장부, 왕의 주화, 은행의 약속, 중앙은행의 신뢰, 그리고 코드
교과서는 물물교환의 불편함 때문에 돈이 생겼다고 설명하지만, 인류학자들은 물물교환만으로 돌아가는 경제를 한 번도 찾지 못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지금 주고 나중에 받는’ 신용과 빚이 먼저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은 거대한 창고이자 은행이었고, 인류 최초의 기록은 시가 아니라 회계 장부였습니다.
쓰기는 회계에서 시작됐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곡물과 양의 수를 나타내던 작은 점토 토큰들이 점토판에 그 모양을 눌러 새기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문자와 숫자가 생겼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수메르의 신전과 궁전은 노동자에게 보리를 배급하고, 농민에게 씨앗을 빌려주고, 모든 것을 점토판에 기록했습니다.
동전이 아니라 무게 단위.
큰 거래와 가치 척도에는 은을, 일상의 거래와 임금에는 보리를 썼습니다. 은 한 셰켈(약 8.3g)은 원래 무게 단위였고, 거래할 때마다 은 조각을 저울에 달았습니다. 그러나 은이 실제로 손에서 손으로 오가는 일은 드물었고, 대부분의 거래는 장부에 기록했다가 나중에 정산했습니다.
장부를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빚을 갚지 못한 농민은 땅을 잃거나 가족이 노예가 됐습니다. 사회가 무너질 지경이 되면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즉위할 때 모든 개인 부채를 말소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성경의 희년(50년마다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풀어주는 제도)도 이 전통과 이어집니다. 빚이 쌓여 사회를 무너뜨리는 문제와 그 해법은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연 20% 복리로 두 배가 되려면?
수메르어에서 이자를 뜻하는 말은 가축의 새끼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축을 빌려주면 새끼를 낳으니 그 새끼를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는 연 20% 복리로 돈이 두 배가 되려면 몇 년이 걸리는지 계산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금리 규제의 첫 기록.
구리의 무게로 매긴 값.
이집트에서는 구리의 무게 단위인 데벤을 가치 척도로 썼습니다. 물건 값을 ‘몇 데벤어치’로 매기고 실제로는 곡물, 기름, 옷감으로 주고받았습니다. 국가 곡물 창고에 곡식을 맡기고 받은 영수증이 거래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재(財), 화(貨), 매(買), 귀(貴)에 남은 조개.
인도양 몰디브에서 나는 개오지 조개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서 수천 년간 돈으로 쓰였고,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19세기까지 쓰였습니다. 중국 상나라도 조개를 화폐로 써서, 재물과 사고팔기를 뜻하는 많은 한자에 조개 패(貝)가 들어 있습니다. 라틴어로 돈을 뜻하는 pecunia는 가축을 뜻하는 pecus에서 왔습니다.
왕이나 도시가 무게와 순도를 보증하는 주화가 등장해 매번 저울에 달 필요가 없어집니다. 주화는 군대와 함께 퍼졌습니다. 국가가 병사에게 주화로 급여를 주고 다시 세금으로 걷으면, 병사가 머무는 곳마다 시장이 생겼습니다. 철학의 축의 시대는 주화가 그리스, 인도, 중국에 거의 동시에 퍼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왕의 문장이 무게를 보증하다.
지금의 튀르키예 서부에 있던 리디아 왕국에서 처음으로 무게와 순도를 일정하게 맞추고 문장을 찍은 금속 덩어리를 만들었습니다. 강에서 나는 금과 은의 천연 합금(일렉트럼)이었습니다.
‘엄청난 부자’의 대명사.
아테네의 올빼미 은화.
주화는 빠르게 그리스 도시국가들로 퍼졌고, 아테네의 올빼미 은화는 지중해 전역의 기축통화가 됐습니다. 인도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은판에 문양을 찍은 주화가 나왔습니다.
은을 나누지 않고 배를 짓다.
아테네 근처 라우리온 은광에서 큰 은맥이 발견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은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함선 200척을 지었습니다. 그 함대가 3년 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쳤습니다.
돈이 돈을 낳는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은 교환을 위해 생긴 것인데 돈이 돈을 낳는 이자는 부자연스럽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이자(토코스)는 ‘새끼’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 비판은 중세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자 금지로 이어집니다.
둥근 동전에 네모난 구멍.
중국은 처음에 칼과 농기구 모양의 청동 화폐를 썼습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며 둥근 동전에 네모난 구멍이 뚫린 반량전으로 화폐를 통일했고, 이 모양은 2,000년 넘게 동아시아 동전의 기본형이 됐습니다. 구멍에 끈을 꿰어 꾸러미로 들고 다녔습니다.
돈이 부족할 때마다 황제들은 은화에 섞는 은을 몰래 줄였습니다. 화폐를 남발하고 가격 통제로 막으려다 실패하는 패턴이 처음 나타나고, 반대로 순도를 지킨 금화는 수백 년 동안 신뢰를 얻습니다.
같은 은으로 더 많은 동전을.
로마의 기본 은화 데나리우스의 은 함량을 네로 때부터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양의 은으로 더 많은 동전을 만들면 당장 군대에 줄 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은도금한 구리 동전.
내전과 침입이 이어지던 3세기 위기 때 은 함량 감소는 극에 달해, 은화가 사실상 은도금한 구리 동전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동전을 믿지 않게 됐고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어기면 사형.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1,000개가 넘는 상품과 임금의 최고 가격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상인들은 물건을 시장에서 거둬들였고 암시장만 커졌습니다. 화폐를 남발하고 가격 통제로 막으려다 실패하는 패턴은 이후 수없이 반복됩니다.
700년 동안 순도를 지킨 금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도입한 솔리두스 금화는 비잔틴 제국에서 700년 가까이 순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며 지중해 세계의 신뢰받는 화폐가 됐습니다. 영어 soldier(급여를 받는 병사)의 어원으로 꼽힙니다.
금화 디나르와 은화 디르함.
우마이야 왕조는 글자만 새긴 독자적인 금화 디나르와 은화 디르함을 만들었습니다. 이슬람 상인들은 멀리 떨어진 도시 사이에서 돈 대신 지불 약속 문서(사크)를 주고받았는데, 영어 cheque(수표)의 어원으로 꼽힙니다. 이자(리바)를 금지한 이슬람은 투자자와 상인이 이익과 손실을 나누는 방식으로 금융을 발전시켰습니다.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지폐가 나왔다가 남발로 무너지고, 이탈리아 상인들은 은행과 환어음, 복식부기를 만들어 교회의 이자 금지를 우회합니다. 상업이 수학을 바꿉니다.
무거운 철전 대신 종이를.
송나라 쓰촨 지방의 철전은 무겁고 값이 낮아 큰 거래에 엄청난 양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상인들이 철전을 맡기고 받은 보관증(교자)을 대신 주고받기 시작했고, 송 정부가 그 발행을 넘겨받아 세계 최초의 정부 지폐가 됐습니다.
로마 숫자로는 장부를 쓸 수 없었다.
나무껍질 종이를 금처럼.
원나라는 지폐를 유일한 법정 화폐로 삼았고,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이 나무껍질 종이를 금처럼 쓰게 만든다며 경탄했습니다. 그러나 원과 명 초기 정부가 재정이 부족할 때마다 지폐를 남발하면서 가치가 폭락했고, 명나라는 결국 15세기에 지폐를 사실상 포기하고 은을 화폐로 쓰게 됩니다. 이 결정이 훗날 세계 경제를 바꿉니다.
벤치(banco) 위의 환전상.
피렌체, 제노바, 베네치아의 환전상들은 시장의 벤치 위에서 일했고, 여기서 bank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피렌체에서 돈을 내고 받은 어음을 브뤼헤에서 그곳 화폐로 바꾸는 환어음 덕분에 금화를 들고 위험한 길을 갈 필요가 없었고, 환율 차이에 이자를 숨겨 교회의 이자 금지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대부업을 유대인이 맡게 된 것은 오랜 반유대주의의 한 원인이 됐습니다.
은행의 부가 르네상스를 후원하다.
메디치 은행은 유럽 곳곳에 지점을 두고 교황청의 재정까지 관리했고, 그 부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시민들에게 강제로 돈을 빌리고 그 채권을 사고팔게 해 국채 시장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차변과 대변, 언제나 합이 맞도록.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는 베네치아 상인들이 쓰던 복식부기를 처음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모든 거래를 양쪽에 기록해 항상 합이 맞게 하는 이 방식은 500년 넘게 그대로 쓰입니다. 괴테는 복식부기를 인간 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 중 하나라고 칭찬했습니다.
아메리카의 은이 세계를 돌아 중국으로 흘러가며 최초의 세계화가 일어나고, 물가가 오르자 화폐 이론이 태어납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주식회사와 중앙은행이 생기고,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 곳에서 돈을 만드는 곳이 됩니다.
보헤미아 은광에서 온 이름.
역사상 최초의 세계 통화.
스페인은 지금의 볼리비아에서 포토시 은광을 발견했고, 원주민의 강제 노동으로 엄청난 양의 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수많은 원주민이 광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은으로 만든 스페인 8레알 은화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어디서나 통용된 최초의 세계 통화가 됐고, 미국은 독립 후 이 스페인 달러를 기준으로 자기 화폐를 만들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돈이 늘면 물가가 오른다.
아메리카의 은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16세기 유럽 물가가 몇 배로 올랐습니다. 스페인 살라망카의 신학자들과 프랑스의 장 보댕은 돈의 양이 늘면 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처음 이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화폐수량설의 선구입니다.
아메리카와 아시아가 처음 직접 연결되다.
지폐를 포기하고 은으로 세금을 걷기 시작한 명나라에서는 은 값이 유럽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아메리카의 은은 유럽 상인과 마닐라를 거쳐 결국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가 비단, 도자기, 차와 교환됐습니다. 경제사학자들은 이를 최초의 세계화로 봅니다.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주식.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누구나 주식을 사서 투자하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최초의 주식회사였고, 같은 해 암스테르담에 증권거래소가 생겼습니다.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은 질이 제각각인 주화를 표준 계좌 화폐로 바꿔 주며 국제 결제의 중심이 됐습니다.
금고에 있는 금보다 많은 보관증.
런던 사람들은 금을 금세공인의 금고에 맡기고 보관증을 받았고, 곧 보관증 자체를 돈처럼 주고받았습니다. 금세공인들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금을 다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금보다 많은 보관증을 발행해 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간부터 은행은 돈을 만들어 내는 곳이 됐습니다. 지금도 돈의 대부분은 은행이 대출하며 만든 예금입니다. 다만 모두가 한꺼번에 찾으러 오면(뱅크런) 은행은 무너집니다.
남발로 곧 망한 은행, 그리고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
스웨덴의 스톡홀름 은행이 유럽 최초의 지폐를 발행했다가 남발로 곧 망했고, 그 뒤를 이어 1668년 세워진 스웨덴 릭스방크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입니다.
매 순간 이자를 붙이면.
야코프 베르누이는 연 100% 이자를 1년에 한 번, 두 번, 열두 번, 매일, 매 순간 붙이면 원금이 몇 배가 되는지 계산하다가 2.718…로 수렴하는 수, e를 발견했습니다.
국가의 빚 위에 세운 은행.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영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은행권 발행 특권을 받은 잉글랜드 은행이 세워졌습니다. 국가가 빚을 지고 은행이 그 빚을 바탕으로 돈을 만드는 국가 부채와 중앙은행의 결합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영국은 이 체계 덕분에 인구가 세 배 많은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을 감당하고 18세기 패권을 잡았습니다.
지폐와 주식의 첫 거품이 터지고, 부의 원천이 금과 은이 아니라 생산이라는 생각이 경제학을 낳습니다.
조폐국장 뉴턴이 만든 금본위제.
물리학자 뉴턴은 말년에 조폐국장으로 금화와 은화의 교환 비율을 정했는데, 금을 약간 비싸게 매기는 바람에 은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영국에는 금만 남았습니다. 그레셤의 법칙대로였습니다. 영국은 사실상 금본위제가 됐고, 1821년 공식화됩니다.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존 로는 파산 직전의 프랑스 정부를 설득해 지폐를 대량 발행하는 은행과 미시시피 회사를 세웠고, 주가가 폭등했다가 붕괴하며 프랑스 경제가 무너졌습니다. 프랑스는 이후 수십 년간 지폐와 은행을 불신했고, 이는 혁명기의 재정 위기로 이어지는 배경이 됩니다. 같은 해 영국 남해회사 버블도 터졌는데, 뉴턴도 큰돈을 잃고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고 전해집니다.
부는 땅에서 나온다.
유럽 국가들은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금과 은을 쌓는 것이 국력이라고 믿었습니다(중상주의). 프랑스의 케네는 부의 원천이 금이 아니라 땅의 생산물이라며 경제 전체의 흐름을 하나의 표로 그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도덕철학 교수 애덤 스미스는 나라의 부가 금과 은이 아니라 생산 능력이며 그 핵심은 분업이라고 했습니다. 핀 공장을 18개 공정으로 나누면 하루 수천 개를 만든다는 예가 유명합니다.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시장의 경쟁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 책 전체에서 한 번만 나옵니다. 물물교환에서 돈이 생겼다는 교과서 이야기도 이 책에서 시작됩니다.
인구는 기하급수, 식량은 산술급수.
맬서스는 인구가 식량보다 빨리 늘어 인류는 늘 빈곤에 빠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윈이 이 책을 읽고 자연선택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의 예측은 산업혁명과 화학 비료 덕분에 빗나갔습니다.
주요국이 차례로 금본위제를 채택하며 사실상 하나의 세계 화폐 체계가 만들어지고, 1차 세계화가 꽃핍니다. 경제학은 미적분을 언어로 삼고, 금융 공황을 막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정립됩니다.
각자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자본주의 비판의 경제학.
물은 쓸모 있는데 왜 다이아몬드보다 싼가.
영국의 제번스, 오스트리아의 멩거, 스위스의 왈라스가 거의 동시에 물건의 가치가 그것을 만든 노동이 아니라 하나 더 가질 때 얻는 추가 만족(한계효용)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왈라스는 경제 전체를 연립방정식으로 표현했고, 이때부터 미적분이 경제학의 기본 언어가 됩니다.
공황이 오면 무제한 빌려줘라.
배젓은 금융 공황이 오면 중앙은행이 담보만 좋으면 높은 금리로 무제한 빌려줘 멀쩡한 은행이 뱅크런으로 쓰러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870년대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이 차례로 금본위제를 채택하며 고전적 금본위제가 완성됩니다. 정부가 돈을 마음대로 찍지 못해 물가는 안정됐지만, 금이 부족하면 디플레이션이 왔습니다.
노동자를 금의 십자가에 못 박지 말라.
디플레이션에 빚진 농민들이 고통받자, 미국 대선 후보 브라이언은 금만 고집하는 것은 노동자를 금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며 은화도 자유롭게 찍자고 외쳤습니다.
한 개인에게 나라 금융을 맡길 수는 없다.
1907년 금융 공황 때 은행가 J.P. 모건이 은행가들을 자신의 서재에 모아 구제 자금을 마련해 위기를 막았습니다. 한 개인에게 나라의 금융을 의존할 수 없다는 반성으로 미국은 연방준비제도를 세웠습니다.
전쟁 비용을 위해 각국은 금본위제를 멈추고 돈을 찍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대공황을 겪으며 경제학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을 다시 묻고, 전후 질서는 달러를 중심으로 새로 설계됩니다.
1달러에 4조 2천억 마르크.
패전한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까지 떠안았고 정부가 돈을 끝없이 찍으면서 1923년 11월에는 1달러가 약 4조 2천억 마르크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손수레에 지폐를 싣고 빵을 사러 갔고 지폐를 땔감으로 태웠습니다. 평생 모은 저축이 휴지가 된 중산층의 분노는 나치가 부상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됐습니다.
9,000개의 은행이 쓰러지다.
뉴욕 주가 폭락으로 시작해 세계 경제가 무너졌고, 미국에서는 1930~33년 약 9,000개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훗날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통화량이 3분의 1 가까이 줄었는데도 연준이 돈을 풀지 않아 침체가 대공황으로 커졌다고 분석했고, 아이컨그린은 금본위제를 빨리 포기한 나라일수록 빨리 회복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영국은 1931년, 미국은 1933년 금본위제에서 사실상 이탈했습니다.
정부가 직접 돈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케인스는 시장이 저절로 완전고용으로 돌아간다는 기존 이론을 반박했습니다. 사람들과 기업이 불안해서 돈을 쓰지 않으면 수요가 부족해지고, 생산과 고용이 줄어 다시 수요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으니, 이때는 정부가 직접 돈을 써서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후 수십 년간 경제 정책의 표준이 됩니다.
금 1온스에 35달러.
2차 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연합국 44개국 대표가 모여 전후 경제 질서를 설계했습니다. 달러만 금과 바꿀 수 있게 하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했으며, IMF와 세계은행을 세웠습니다. 케인스는 국제 공통 화폐 ‘방코르’를 제안했지만, 세계 금의 대부분을 가진 미국의 안이 채택됐습니다. 달러 패권의 시작입니다.
신용카드와 ATM이 일상의 소비를 바꾸는 동안, 브레턴우즈 체제의 모순이 쌓여 마침내 달러와 금의 연결이 끊깁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모든 주요 화폐가 실물과의 연결을 잃습니다.
일상의 소비가 신용으로.
다이너스 클럽 카드가 나오고 1958년 뱅크아메리카드(지금의 비자)가 뒤따르면서 일상의 소비가 신용으로 바뀌었습니다. 1967년에는 영국에서 첫 현금자동인출기가 설치됐습니다.
달러가 풀릴수록 달러의 신뢰는 약해진다.
트리핀은 세계 경제가 성장하려면 달러가 계속 풀려야 하고 그러려면 미국이 계속 적자를 내야 하는데, 달러가 많이 풀릴수록 금으로 바꿔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약해진다는 근본적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1963년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미국 화폐사』로 통화량이 경제를 좌우한다는 통화주의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다.
베트남 전쟁과 복지 지출로 달러가 너무 많이 풀리자 프랑스 등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고, 8월 15일 닉슨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했습니다. 1973년부터 주요 통화의 환율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됩니다. 이 순간 세계의 모든 주요 화폐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뒷받침하지 않는 법정화폐가 됐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용 장부 이후 화폐는 다시 순수한 약속이 됐습니다.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를 달러로만 팔고 그 수익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미국이 안보를 보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전 세계가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해졌고, 달러는 금 없이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금리를 20% 가까이.
두 차례 오일 쇼크로 물가는 치솟는데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왔고, 케인스식 처방은 물가만 더 올렸습니다. 연준 의장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올리는 극약 처방을 썼습니다. 실업률이 치솟고 농민들이 트랙터로 연준 건물을 에워쌌지만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았습니다.
정치인은 늘 돈을 풀고 싶어 하니 화폐 발행은 정치에서 독립된 중앙은행에 맡기고 물가 안정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표준이 됩니다. 금 대신 중앙은행의 신뢰가 화폐의 닻이 됩니다. 국경을 넘는 자본과 공동 화폐, 그리고 휴대폰 결제가 등장합니다.
연 2% 물가 목표, 그리고 익명의 전자화폐.
뉴질랜드가 처음으로 물가상승률 목표를 공식화했고,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의 표준이 됐습니다. 같은 해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은 익명으로 쓸 수 있는 전자화폐 회사 디지캐시를 세웠습니다. 회사는 1998년 파산했지만 그의 암호학 연구는 이후 암호화폐의 토대가 됩니다.
국경을 넘는 자본의 역습.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동아시아 여러 나라로 번졌습니다. 금융 세계화가 가져온 급작스러운 위기의 대표 사례입니다.
국가가 화폐 주권을 내려놓다.
유럽 11개국이 자국 화폐를 버리고 공동 화폐 유로를 도입했습니다(현금은 2002년). 국가 주권의 상징이던 화폐를 포기한 역사상 유례없는 실험입니다.
은행 계좌 없이 휴대폰으로.
케냐의 엠페사는 은행 계좌 없이 휴대폰 문자로 돈을 주고받게 해 수천만 명에게 금융을 열어 줬습니다. 중국의 알리페이(2004)와 위챗페이는 QR코드 결제로 중국 도시를 거의 현금 없는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0까지 내리고 돈을 새로 만들어 자산을 사들입니다. 중앙은행과 은행 구제에 대한 불신 속에서 비트코인이 태어나 ‘수학과 코드’라는 새로운 신뢰의 근거를 내놓습니다.
이자의 역사 5,000년에 없던 일.
미국 주택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 주택담보대출과 그것을 엮은 금융상품이 연쇄적으로 무너졌고,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습니다.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0까지 내리고 새로 만든 돈으로 국채와 자산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양적완화를 썼고, 유럽중앙은행(2014)과 일본은행(2016)은 아예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습니다.
중앙 관리자 없는 전자 화폐.
리먼 파산 6주 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9쪽짜리 논문을 공개했습니다. 디지털 화폐는 같은 돈을 두 번 쓰는 문제를 막으려고 늘 중앙 관리자가 필요했는데, 비트코인은 모든 거래를 수많은 참여자가 나눠 가진 장부(블록체인)에 암호학적으로 이어 붙이고, 새 기록을 추가하려면 막대한 계산을 하게 만들어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암호학, 분산 시스템, 게임이론의 결합입니다. 사토시의 정체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2,100만 개.
1월 3일 첫 블록에는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이라는 영국 신문 기사 제목이 새겨졌습니다. 총발행량은 2,100만 개로 영원히 고정되어 ‘디지털 금’이라 불립니다. 1971년 금과의 연결이 끊어진 화폐를 수학과 코드로 다시 희소성 위에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이듬해 5월 22일 한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 1만 개로 피자 두 판을 산 것이 첫 실물 거래로 기록됩니다.
화폐보다 부채가 먼저였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물물교환이 화폐 이전의 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화폐 이후의 현상이며, 신용과 빚(장부)이 먼저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화폐사 전체를 다시 보게 하는 이 관점은 메소포타미아의 장부와 블록체인이라는 장부를 잇습니다.
거래소의 붕괴, 1달러에 묶은 코인.
당시 최대의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해킹으로 파산했습니다. 같은 해 1코인을 1달러에 고정하고 준비금을 쌓아 두는 스테이블코인 테더가 등장했습니다. 17세기 금세공인의 보관증이 디지털로 부활한 셈입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실행되는 계약.
이더리움은 화폐를 넘어 블록체인 위에서 자동으로 실행되는 계약(스마트 계약)을 가능하게 했고, 이를 바탕으로 탈중앙화 금융과 NFT가 생겨났습니다.
기업이 국가의 화폐 주권을 위협하다.
페이스북이 수십억 사용자를 위한 자체 화폐 계획을 발표하자 각국 중앙은행이 충격을 받았고, 이는 각국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연구를 크게 앞당겼습니다. 리브라는 규제 압박으로 결국 무산됐습니다.
돈의 가치를 누가 보증할 것인가를 두고 국가(CBDC), 민간 기업(스테이블코인), 수학(비트코인)이 경쟁합니다. 감시와 프라이버시, 은행의 미래, 달러 패권이 걸린 지정학적 경쟁이기도 합니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현금.
바하마가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샌드 달러’를 출시했고, 중국은 디지털 위안의 대규모 시범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은행 예금은 은행의 빚이지만, CBDC는 현금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보증합니다. 정식 출시국은 바하마, 나이지리아, 자메이카 세 곳뿐입니다.
비트코인을 국가 화폐로.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했다가, 2025년 IMF 지원을 받으면서 상점의 비트코인 수용 의무를 폐지했습니다.
40년 만의 물가, 며칠 만에 증발한 코인.
팬데믹과 전쟁, 공급망 차질 속에서 주요국 물가가 40년 만에 최고로 치솟자 중앙은행들은 급격히 금리를 올렸습니다. 같은 해 5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테라-루나가 붕괴해 며칠 만에 수백억 달러가 증발했고, 11월 거래소 FTX가 고객 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파산했습니다.
제도권으로 들어온 비트코인.
국가 대신 민간 스테이블코인으로.
1월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정부 기관의 CBDC 추진을 금지했고, 3월에는 압수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보유하는 ‘전략 비트코인 비축’을 만들었습니다. 7월 18일에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첫 연방 규제 틀인 지니어스법에 서명했습니다. 디지털 달러를 국가가 아니라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맡기겠다는 선택입니다.
현금을 보완하는 유럽의 디지털 화폐.
유럽중앙은행은 2025년 10월 디지털 유로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결정했고, 2026년 6월 유럽의회가 디지털 유로 법안을 가결했습니다. 2027년 시범 사업, 2029년 첫 발행을 목표로 합니다. 미국 결제망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유럽, 달러 결제망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모든 거래를 볼 수 있다면 감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예금이 CBDC로 옮겨 가면 은행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