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바깥의 에너지를 쓰다.
남아프리카 원더워크 동굴에서 약 100만 년 전 불을 쓴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일상적이고 통제된 불의 사용은 수십만 년 전부터 확실해집니다.
100만 년 전 모닥불부터 증기, 석유, 원자력, 그리고 지구 위의 작은 태양까지
불은 인류가 자기 몸 바깥의 에너지를 처음 쓴 사건입니다. 음식을 익히고, 추위와 맹수를 막고, 숲을 태워 초원을 만들며 인간은 처음으로 에너지로 자연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몸 바깥의 에너지를 쓰다.
남아프리카 원더워크 동굴에서 약 100만 년 전 불을 쓴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일상적이고 통제된 불의 사용은 수십만 년 전부터 확실해집니다.
불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익힌 음식은 소화가 쉽고 더 많은 열량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 랭엄은 요리 덕분에 소화기관에 쓰던 에너지를 뇌로 돌릴 수 있었고, 그것이 인간의 큰 뇌를 가능하게 했다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모닥불 주변에 모여 이야기하는 사회적 시간도 생겼습니다.
숲을 태워 초원을 만들다.
수렵채집인들은 불을 놓아 숲을 태우고 초원을 만들어 사냥감을 모았습니다. 불 덕분에 추운 지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고, 인간이 에너지로 자연을 대규모로 바꾼 첫 사례가 됐습니다.
농업은 본질적으로 태양 에너지를 식물로 모아 수확하는 시스템입니다. 같은 땅에서 수렵채집보다 훨씬 많은 열량을 얻으면서 인구가 늘고 도시가 생깁니다. 이후 1만 년 가까이 문명은 사람과 동물의 근육, 그리고 나무를 태운 열로 돌아갑니다. 성장의 한계는 땅의 넓이와 광합성 효율이었습니다.
태양 에너지를 모으는 밭.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농업은 같은 땅에서 훨씬 많은 식량을 얻게 했습니다. 이 잉여 에너지 위에서 도시와 문자, 수학, 그리고 성벽이 생겨납니다.
사람보다 강한 근육.
소가 끄는 쟁기.
수레로 짐을 옮기다.
고대의 거대한 건축물은 수많은 사람의 근육으로 지어졌고, 노예 노동은 끔찍한 사회 제도이자 사실상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었습니다. 금속을 녹이는 숯 때문에 지중해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에너지 부족과 환경 파괴는 처음부터 있던 문제입니다. 바람과 물이 근육 외의 첫 기계 동력이 됩니다.
근육이 아닌 첫 기계 동력.
수많은 사람의 근육으로 지은 건축.
피라미드, 만리장성, 로마의 도로 같은 고대의 거대 건축물은 모두 사람의 근육으로 지어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노예 노동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었습니다. 청동과 철을 녹이는 숯을 만들기 위해 지중해 연안의 숲은 크게 줄었습니다.
흐르는 물로 곡식을 빻다.
그리스 세계에서 흐르는 물로 바퀴를 돌려 곡식을 빻는 수차가 등장했습니다. 2세기경 로마의 남프랑스 바르브갈에는 언덕 비탈을 따라 수차 16개를 계단식으로 늘어놓은 고대 최대의 제분 단지가 있었습니다.
1,700년 일찍 나온 증기기관의 조상.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증기를 뿜으며 회전하는 공을 만들었습니다. 원리상 증기기관의 조상이지만 신전의 신기한 장난감으로만 쓰였습니다. 값싼 노예 노동 때문에 기계가 필요 없었다는 설, 정밀한 금속 가공 기술이 없었다는 설 등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흔히 정체된 시기로 보지만, 중세는 에너지 면에서 고대보다 훨씬 많은 기계 동력을 썼습니다. 마을마다 수차가 돌고, 풍차가 평지에서 동력을 얻고, 말의 효율이 크게 오릅니다. 중국에서는 석탄이 먼저 대량으로 쓰입니다.
강이 없어도 동력을.
페르시아에서 수직축 풍차가 나왔고, 12세기 유럽에서는 날개가 수평축으로 도는 풍차가 발전했습니다. 강이 없는 평지에서도 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말이 소를 대신하다.
말의 목을 조르지 않고 어깨로 끌게 하는 목걸이와 쇠 편자가 보급되면서, 말이 소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쟁기와 수레를 끌게 됐습니다. 유럽의 농업 생산성이 크게 올랐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석탄 경제.
숲이 부족해진 송나라는 석탄을 대량으로 쓰기 시작했고, 석탄으로 철을 대량 생산해 당시 철 생산량이 산업혁명 직전의 유럽 전체에 맞먹었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이어지지 못했고, 왜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는 지금도 큰 논쟁거리입니다.
마을마다 하나씩.
잉글랜드의 토지 조사 기록에는 수차가 약 5,600개 기록돼 있습니다. 곡식 빻기뿐 아니라 모직물 다듬기, 대장간 풀무, 제재, 제지에도 쓰였습니다.
숲이 사라지자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석탄으로 갈아탑니다. 탄광이 깊어지며 차오르는 물을 퍼내기 위해 증기기관이 태어납니다. 석탄을 캐기 위한 기계가 석탄을 연료로 쓴 것입니다.
화석연료 이전 에너지 경제의 정점.
네덜란드는 수천 개의 풍차로 물을 퍼내고 나무를 켜고 곡식을 빻았고, 습지에서 캐낸 이탄을 연료로 써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됐습니다.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황금시대가 이 에너지 위에 있었습니다.
말들도 떼어 내지 못한 반구.
물리학의 진공과 기압 연구가 증기기관의 바탕이 됐습니다. 게리케는 공기를 뺀 금속 반구를 말 여러 마리가 끌어도 떼어 내지 못하는 실험으로 대기압의 엄청난 힘을 보여줬습니다. 1690년 파팽은 증기를 응축시켜 진공을 만들고 대기압으로 피스톤을 움직이는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대기오염.
인구가 늘고 조선업과 제철업이 커지며 숲이 사라지자 영국은 연기 많고 냄새나는 석탄으로 난방을 바꿨습니다. 작가 존 이블린은 석탄 연기로 뒤덮인 런던의 대기오염을 고발하는 글을 썼습니다. 영국은 운 좋게 땅 밑에 석탄이 많았습니다.
증기로 물을 빨아올리다.
숯 없이 철을 만들다.
에이브러햄 다비는 석탄을 구워 만든 코크스로 철을 제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숲에서 나오는 숯이 필요 없어지자 철을 거의 무한정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실용적으로 쓰인 최초의 증기기관.
실린더에 증기를 넣고 찬물을 뿌려 응축시키면 진공이 생기고, 대기압이 피스톤을 밀어 내립니다. 연료의 약 1%만 일로 바뀌는 비효율적인 기관이었지만, 석탄이 사실상 공짜인 탄광 입구에서는 쓸 만했습니다.
산업혁명은 에너지 관점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그해 땅에서 자라는 식물의 한계를 벗어나, 수억 년 동안 쌓인 화석 에너지를 꺼내 쓰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경제사학자 리글리는 이를 유기 경제에서 광물 경제로의 전환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증기기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열역학이 태어납니다.
실린더는 뜨겁게, 응축은 따로.
제임스 와트는 뉴커먼 기관 모형을 수리하다가, 증기를 실린더 밖의 별도 응축기에서 식히면 실린더를 계속 뜨겁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연료 효율이 몇 배로 좋아졌습니다. 그는 성능을 말 몇 마리 몫의 일로 표시했고(마력), 전력 단위 와트는 그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증기기관이 모든 기계를 돌리다.
와트는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장치를 붙였습니다. 이제 증기기관이 물 퍼내기뿐 아니라 공장의 모든 기계를 돌릴 수 있게 됐고, 강가가 아니라 어디에나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맨체스터 같은 공업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바람 없이 대양을 건너다.
기술이 과학을 낳다.
카르노는 열기관의 효율에 이론적 한계가 있는지를 묻고, 효율이 뜨거운 쪽과 차가운 쪽의 온도 차이에만 달려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어 줄, 헬름홀츠, 클라우지우스, 켈빈이 에너지 보존과 엔트로피 법칙을 세웁니다. 보통은 과학이 기술을 낳지만, 증기기관은 이론 없이 먼저 만들어졌고 열역학이 그것을 이해하려다 태어났습니다.
말보다 빠르게 육지를 달리다.
전년도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 ‘로켓’이 경주에서 우승했고, 최초의 본격적인 여객·화물 철도가 개통됐습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말보다 빠르게 육지를 이동하게 됐습니다.
석유가 고래기름을 대체하고 곧 내연기관의 연료가 됩니다. 전기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에너지를 운반하고 나눠 쓰는 새로운 방식으로, 어떤 에너지원이든 한데 모아 어디로든 보낼 수 있게 합니다.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이 시작되고, 화석연료가 비료를 거쳐 식량이 됩니다.
석유가 고래를 구하다.
밤을 밝히는 고급 기름이던 고래기름은 남획으로 값이 치솟았습니다. 드레이크가 펜실베이니아에서 기계로 땅을 뚫어 석유를 뽑아냈고, 정제한 등유가 고래기름을 대체했습니다. 초기에 휘발유는 쓸모없는 부산물이라 버려졌습니다.
효율이 좋아지면 소비는 늘어난다.
경제학자 제번스는 『석탄 문제』에서 와트가 증기기관의 효율을 높였는데도 석탄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효율이 좋아지면 에너지 사용이 싸지고, 더 많은 곳에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에너지 절약과 AI 데이터센터 전력 논쟁에서 계속 인용됩니다.
석유 정제의 독점.
록펠러는 미국 석유 정제의 대부분을 장악해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가 됐습니다. 1911년 독점금지법으로 회사가 30여 개로 쪼개졌고, 그 후손이 지금의 엑손모빌, 셰브런 등입니다.
실린더 안에서 연료를 태우다.
오토가 4행정 가솔린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연료를 실린더 안에서 직접 태우니 증기기관보다 훨씬 작고 가벼웠고, 버려지던 휘발유가 갑자기 핵심 연료가 됩니다. 1886년 벤츠의 가솔린 자동차, 1890년대 디젤의 디젤 엔진이 뒤를 잇습니다.
발전소, 전선, 계량기, 전구를 하나로.
에디슨은 1879년 오래 가는 백열전구를 실용화한 데 이어, 뉴욕에 최초의 상업 발전소를 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발전소부터 전구까지를 하나로 묶은 전력 공급 시스템이었습니다. 원리는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입니다.
지금 발전소의 심장.
파슨스는 증기로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리는 터빈을 발명했습니다. 피스톤 기관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크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석탄, 가스, 원자력 발전소 대부분은 결국 물을 끓여 증기 터빈을 돌리는 방식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도 거대한 주전자입니다.
전류 전쟁의 결말.
에디슨의 직류는 멀리 보내면 손실이 커서 발전소 근처에만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는 변압기로 전압을 높여 멀리 보낼 수 있는 교류를 밀었고, 에디슨은 교류가 위험하다며 동물 감전 시연까지 하며 맞섰습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조명과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소에서 교류가 이기면서 지금의 전력망 구조가 정해졌습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였던 경고.
자동차의 대중화.
석탄은 많고 석유는 없는 나라의 선택.
영국 해군 장관 처칠은 군함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석유가 더 가볍고 효율적이며 배를 더 빠르게 만들었지만, 영국 땅에는 석유가 없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페르시아 석유 회사의 지분을 사들였고(지금의 BP), 이때부터 중동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먹고 있다.
막대한 에너지로 공기 중 질소에서 비료를 만드는 공정이 대규모로 가동됐습니다. 지금 인류가 먹는 식량의 상당 부분이 이 비료 덕분입니다. 태양에서 식물, 식량으로 이어지던 1만 년의 사슬에 화석연료가 끼어든 것입니다.
전기는 근대화 그 자체의 상징이 되어 농촌과 가정으로 퍼집니다. 중동에서 거대 유전이 발견되고, 2차 세계대전은 상당 부분 석유 전쟁이 됩니다. 그리고 핵분열이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의 문을 엽니다.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권력에 전기화를 더한 것.
레닌은 전국 전기화 계획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기가 근대화 그 자체의 상징이었습니다. 세탁기, 냉장고, 진공청소기 같은 가전은 가사 노동, 특히 여성의 노동을 크게 바꿉니다.
농촌까지 전기를.
같은 해 열린 두 개의 문.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서 상업성 있는 거대 유전이 터졌고, 1930년대 쿠웨이트 등 중동에서 거대 유전이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같은 해 말 독일에서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지는 핵분열이 발견됩니다. 쪼개질 때 나온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을 또 쪼개는 연쇄 반응을 순간적으로 일으키면 폭탄이고, 천천히 통제하면 발전소입니다.
석유가 전쟁을 결정하다.
미국이 일본에 석유 수출을 끊은 것이 진주만 공격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은 코카서스 유전을 노렸고 석탄으로 합성 연료를 만들어 버텼습니다. 전차, 전투기, 항공모함 모두 석유로 움직였습니다.
원자력은 폭탄 프로젝트의 일부로 태어났다.
전후 값싼 석유가 넘쳐나며 자동차와 교외 주택, 비행기 여행, 플라스틱, 세계 무역이 폭발합니다. 원자력은 군사에서 민간으로 나오며 ‘너무 싸서 계량할 필요도 없는 전기’를 약속합니다. 같은 시기 태양전지가 발명되고 이산화탄소 측정이 시작됩니다.
원자력으로 켠 첫 전구.
미국 아이다호의 실험로 EBR-I이 처음으로 원자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 몇 개를 켰습니다. 1953년 아이젠하워는 유엔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 연설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안했습니다.
전력망의 원자력, 잠수함의 경수로.
소련 오브닌스크 원전이 처음으로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했고, 1956년 영국 콜더홀, 1957년 미국 시핑포트가 뒤를 이었습니다. 같은 해 미국 해군의 리코버 제독은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에 작고 튼튼한 경수로를 채택했고, 그 기술과 인력이 그대로 민간 발전소로 이어지면서 경수로가 세계 원자로의 주류가 됩니다. 기술사학자들은 이를 경로 의존성의 대표 사례로 꼽습니다.
원자력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빗나간 예언.
효율 6%, 위성 전용.
벨 연구소가 실리콘 태양전지를 발명했습니다. 효율이 약 6%였고 너무 비싸서 처음에는 1958년 인공위성 뱅가드 1호 같은 우주 전원으로만 쓰였습니다.
미국 석유 생산은 정점을 찍고 줄어든다.
지질학자 허버트는 미국 석유 생산이 1970년 무렵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석유 정점은 새 유전과 셰일 기술 때문에 계속 미뤄졌습니다.
해마다 올라가는 이산화탄소.
킬링이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시작했고, 매년 꾸준히 올라가는 곡선이 기후 과학의 상징이 됐습니다.
산유국이 손을 잡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를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 무렵 석유는 석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 에너지원이 됩니다.
석유가 무기가 되자 각국은 원자력과 에너지 절약, 그리고 태양과 바람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러나 잇단 사고와 치솟는 비용으로 원자력은 정체에 빠지고, 기후 변화가 국제 의제로 떠오릅니다.
석유 수출을 끊다.
중동 전쟁 때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끊으면서 유가가 몇 배로 뛰었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2차 오일 쇼크가 왔습니다. 석유에 의존하는 것이 안보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나라들은 에너지 절약, 연비 규제, 원자력, 재생 에너지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갖습니다.
전기의 약 70%를 원자력으로.
석유가 없는 프랑스는 오일 쇼크 직후 대규모로 원전을 짓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기의 약 70%를 원자력으로 생산합니다. 같은 설계를 반복해서 지어 비용을 낮췄습니다.
신뢰가 무너지다.
오일 쇼크가 키운 바람.
원자력 역사상 최악의 사고.
기후 변화가 국제 의제가 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설립됐고, 1997년 교토 의정서로 이어졌습니다. 산업혁명이 화석 에너지로 성장의 한계를 넘었다면, 그 대가가 기후 변화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들쭉날쭉한 태양과 바람을 메우다.
소니가 상용화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가격이 폭락하면서 전기차와 대규모 전력 저장을 가능하게 합니다(2019년 노벨 화학상).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태양과 바람의 약점을 배터리가 메우기 시작합니다.
태양을 지구로 가져오려는 70년의 시도.
태양은 수소 원자핵끼리 합쳐 헬륨이 되며 에너지를 냅니다. 지구에서는 1억 도 이상의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둬야 하고, 1950년대 소련의 탐과 사하로프가 고안한 도넛 모양의 토카막이 세계 표준이 됐습니다. 영국의 유럽 공동 장치 JET는 1997년 당시 세계 최대 핵융합 출력을 냈습니다. 같은 해 교토 의정서가 채택됐습니다.
수압 파쇄 기술이 석유와 가스의 지도를 바꾸고, 후쿠시마가 원자력에 또 한 번 타격을 줍니다. 태양광 가격은 학습 곡선을 따라 폭락하고, 세계는 파리 협정으로 탄소 중립을 약속합니다.
뽑을 수 없던 석유와 가스.
땅을 수평으로 뚫고 고압의 물로 암석을 깨는 수압 파쇄 기술이 발전하면서 셰일층의 석유와 가스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국은 2018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고, 값싼 천연가스가 석탄 발전을 대체하면서 미국의 탄소 배출이 오히려 줄기도 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세 기의 노심 용융.
대지진과 쓰나미로 전력이 끊기면서 원자로 3기의 노심이 녹았습니다. 독일은 탈원전을 결정해 2023년 마지막 원전을 닫았습니다. 사고와 함께 비용과 공기 지연이 원자력의 발목을 잡아, 많은 서방 국가에서 수십 년 동안 신규 원전 건설이 거의 멈췄습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
재생 에너지는 늘지만 화석연료는 줄지 않는다.
재생 에너지가 빠르게 늘었지만 세계 1차 에너지 공급에서 화석연료 비중은 여전히 약 80% 수준입니다. 에너지 역사학자 스밀은 인류의 에너지 역사가 전환이 아니라 추가의 역사였다고 지적합니다. 석탄이 나무를, 석유가 석탄을 완전히 대체한 것이 아니라 위에 쌓였을 뿐이고, 새 에너지원이 지배적이 되는 데는 매번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태양광이 역사상 가장 싼 전기가 되고, 에너지 안보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원자력을 다시 불러냅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민간 핵융합 기업이 경쟁하지만, 아직 모두 초기 단계입니다.
50년 동안 가격이 99% 넘게 떨어지다.
생산량이 두 배가 될 때마다 가격이 일정 비율로 떨어지는 학습 곡선을 따라, 태양광 모듈 가격은 1970년대 대비 99% 넘게 떨어졌고 국제에너지기구는 많은 지역에서 태양광이 역사상 가장 싼 전기라고 평가했습니다.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면 싸진다는 이 교훈이 바로 SMR이 노리는 지점입니다. 같은 해 러시아의 바지선 수상 원전 아카데믹 로모노소프가 상업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상업 운전을 시작한 소형 원자로.
중국의 고온가스로 HTR-PM이 전력망에 연결되고 2023년 상업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물 대신 헬륨 가스로 식히는 4세대 방식으로, 아카데믹 로모노소프와 함께 운전 중인 몇 안 되는 소형 원자로입니다. 많은 SMR은 1950년대 잠수함 때문에 접어 뒀던 소듐, 녹은 소금, 헬륨 냉각 같은 다른 길을 다시 시도합니다.
오일 쇼크의 교훈, 그리고 70년 만의 점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구조가 무너지며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같은 교훈입니다. 12월에는 미국 국립점화시설(NIF)이 레이저로 투입한 에너지보다 많은 핵융합 에너지를 처음 만들어 냈습니다. 다만 레이저를 만드는 데 든 전기 전체에 비하면 아직 훨씬 적습니다.
비용이라는 벽.
서방 SMR의 첫 주자였던 뉴스케일의 대표 프로젝트가 치솟는 비용으로 무산됐습니다. 같은 해 완공된 미국 보글 원전 3·4호기는 예정보다 7년 늦어지고 비용이 두 배 넘게 들었습니다. 독일은 마지막 원전을 닫았고, 영국 JET는 운영을 마치기 직전 핵융합 에너지 생산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AI가 원자력을 다시 부르다.
거대한 AI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기를 24시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멈춰 있던 스리마일섬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전력 계약을 맺었고 구글과 아마존도 차세대 원자로 기업과 계약했습니다. 50년 전 사고로 원자력 몰락의 상징이 된 바로 그 장소입니다. 같은 해 국제 핵융합 실험로 ITER는 본격 운전 일정을 2030년대 중반으로 미뤘습니다.
국가 연구소에서 민간 기업으로.
중국의 EAST와 프랑스의 WEST가 고온 플라스마를 수십 분간 유지하는 기록을 잇따라 세웠습니다. 고온 초전도 자석으로 소형 토카막을 짓는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스, 마이크로소프트에 전기를 팔기로 하고 발전소를 착공한 헬리온 등 민간 기업이 핵융합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으로 2026년 7월 4일까지 시험용 원자로 3기를 임계에 도달시킨다는 목표를 세웠고, 캐나다 달링턴의 BWRX-300은 건설 허가를 받고 착공했습니다(첫 호기 가동 목표는 2030년).
상업 발전까지는 아직 먼 길.
3월 빌 게이츠가 세운 테라파워의 소듐냉각로 나트륨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경수로가 아닌 원자로로는 처음으로 건설 허가를 받았고, 4월 원자로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6~7월에는 안타레스, 발라 아토믹스, 디플로이어블 에너지의 시험용 원자로가 차례로 임계에 도달해 ‘7월 4일까지 3기’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8월에는 오클로의 시험로도 뒤를 이었습니다. 다만 모두 출력이 거의 없는 무출력 임계로, 상업 발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육상 최초의 상업용 SMR을 노리는 중국의 링룽 1호는 2026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고, 핵융합 기업 제너럴 퓨전은 나스닥에 상장했습니다. 공장 대량 생산이 실제로 값을 낮추는지, 특수 연료(HALEU)를 어떻게 확보할지는 아직 서방 어디에서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핵융합에는 늘 30년 뒤에 실용화된다는 오래된 농담이 따라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