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망치면 그해 이자는 면제.
함무라비 법전은 곡물과 은 대출의 이자 상한을 정했을 뿐 아니라, 폭풍이나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면 그해 이자를 면제하도록 했습니다. 자연재해의 위험을 채권자와 채무자가 나누는 일종의 보험이 대출 계약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함무라비의 재해 조항부터 브라운 운동, 블랙-숄즈, 그리고 백만분의 1초의 경쟁까지
금융의 핵심인 시간의 거래와 위험의 거래는 처음부터 함께 있었습니다. 대출 계약 안에 보험이 들어 있었고, 국가의 세금 징수권이 사고팔렸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그해 이자는 면제.
함무라비 법전은 곡물과 은 대출의 이자 상한을 정했을 뿐 아니라, 폭풍이나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면 그해 이자를 면제하도록 했습니다. 자연재해의 위험을 채권자와 채무자가 나누는 일종의 보험이 대출 계약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배가 난파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아테네 상인들은 배와 화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 무역을 떠났습니다. 무사히 돌아오면 원금과 한 번 항해에 20~30%의 높은 이자를 갚고, 배가 난파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됐습니다. 높은 이자에는 사실상 보험료가 들어 있었습니다. 데모스테네스의 법정 연설에 이 계약을 둘러싼 소송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포룸에서 사고판 지분.
로마 공화정은 속주의 세금 징수를 민간 조합(퍼블리카니)에 입찰로 맡겼고, 이 조합의 지분이 포룸 근처에서 거래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대적 주식시장이었는지는 논쟁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자 금지가 역설적으로 금융 혁신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자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빌려준 것이 아니라 함께 투자한 것.
베네치아와 제노바에서 자본가가 돈을 대고 상인이 항해와 장사를 맡아 이익을 정해진 비율로 나누는 계약이 퍼졌습니다. 이익과 위험을 함께 지는 투자라 이자 금지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주식의 원형이며, 이슬람 금융의 무다라바와 거의 같은 구조로 이슬람 세계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래의 돈을 지금의 가치로.
피보나치의 『산반서』에는 미래에 받을 여러 번의 지급액을 지금 가치로 환산해 비교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경제사학자 괴츠만은 이를 근거로 피보나치가 현재가치 개념을 처음 체계적으로 다뤘다고 봅니다. 지금 모든 금융 가격 결정의 출발점인 ‘미래 현금흐름을 할인한 값’의 시작입니다.
시장이 국가의 신용도를 매일 평가하다.
베네치아는 부유한 시민들에게 강제로 돈을 빌리면서 연 5% 이자를 주고, 그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게 했습니다. 국가의 빚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최초의 국채 시장입니다. 채권 값은 전쟁에서 이기면 오르고 지면 떨어졌습니다.
금융 가문이 국가 재정을 좌우하고, 국가의 채무불이행이 금융가를 무너뜨립니다. 처음부터 거래소로 설계된 건물이 등장합니다.
국채 보유자가 운영하는 은행.
금융가가 황제를 만들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야코프 푸거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서 이기도록 선거인을 매수할 돈을 빌려줬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이 여러 차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푸거 가문도 결국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국가 부도의 역사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거래소로 지은 건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함께 근대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가 태어나고, 공매도와 옵션과 선물이 거의 동시에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 파스칼과 페르마가 확률론을 시작하면서 금융과 수학이 처음 본격적으로 만납니다.
영구 자본, 자유로운 양도, 유한책임.
이전의 무역 회사는 항해 한 번이 끝나면 해산했지만, 동인도회사는 영구적인 회사였습니다. 투자금은 회사에 묶이는 대신 투자자는 주식을 언제든 팔아 돈을 회수할 수 있었고, 투자한 금액까지만 책임졌습니다. 하녀와 장인까지 주식을 샀습니다. 이 구조가 지금 모든 상장 기업의 기본입니다.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생겼습니다.
거래소가 생기자마자 나타난 공매도.
동인도회사 창립 투자자 이삭 르 메르는 회사와 사이가 틀어지자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대규모로 주식을 공매도하고 악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리려 했습니다. 기록상 최초의 조직적인 공매도 공격이고, 이듬해 네덜란드는 최초의 공매도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옵션과 선도 계약도 이 무렵 암스테르담에 이미 있었습니다.
구근 하나가 집 한 채 값.
튤립 구근 하나가 집 한 채 값에 거래되다가 갑자기 폭락했습니다. 최초의 투기 버블로 유명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참여자와 피해가 과장됐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것은 거래 대부분이 실제 구근이 아니라 나중에 구근을 넘겨받기로 한 계약, 즉 선도 계약이었다는 점입니다.
만기가 없는 영구채.
네덜란드의 수자원 관리 기관들은 제방을 쌓을 돈을 마련하려고 만기 없이 영원히 이자를 주는 영구채를 발행했습니다. 예일 대학교가 소장한 1648년 발행 채권은 지금도 이자를 받고 있습니다.
중단된 도박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파스칼과 페르마는 도박이 중간에 중단되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확률을 고려해, 각자가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몫대로 판돈을 나누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기댓값이고, 지금 모든 파생상품 가격 결정의 핵심입니다. 옵션의 공정한 가격도 결국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의 기댓값을 할인한 것입니다.
교회 기록으로 생존 확률을 추정하다.
커피하우스의 보험, 그리고 주식 시장에 관한 첫 책.
에드워드 로이드의 커피하우스에 선장과 상인, 보험업자들이 모여 해상 보험 계약을 맺었고, 이것이 세계 최대 보험 시장 로이즈 오브 런던이 됩니다. 보험업자가 계약서 아래에 서명해 보험 인수를 underwriting이라 부르게 됐습니다. 같은 해 암스테르담의 조제프 드 라 베가는 주식 시장의 옵션 거래와 공포와 탐욕의 순환을 묘사한 책을 썼습니다. 주식 시장에 관한 최초의 책입니다.
젊은이에게 연금을 너무 싸게 팔고 있다.
천문학자 핼리(혜성의 그 핼리)는 브레슬라우의 출생과 사망 기록으로 정밀한 생명표를 만들고 종신연금의 공정한 가격을 계산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가격에 연금을 팔던 영국 정부가 젊은 사람에게 너무 싸게 팔고 있다는 것을 수학으로 보여줬습니다.
첫 대형 주식 버블이 터지고 규제가 생깁니다. 일본에서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선물 거래소가 문을 열고, 수학은 생명보험과 위험 회피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영원히 이자를 주는 국채가 대영제국을 떠받칩니다.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회사까지.
남해회사 주가가 몇 달 만에 10배 가까이 올랐다가 폭락했습니다. 광풍 속에 ‘엄청난 이익을 낼 사업을 하는 회사, 다만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모름’ 같은 회사까지 돈을 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뉴턴은 이익을 보고 팔았다가 주가가 더 오르자 다시 들어가 큰돈을 잃었습니다. 영국 의회는 허가 없는 주식회사 설립을 금지하는 버블법을 만들었고, 이 법은 100년 넘게 영국 주식회사의 발전을 막았습니다.
정규분포를 발견한 사람의 연금 수학.
정규분포를 처음 발견한 드무아브르는 연금 계산을 체계화했습니다. 1762년 영국에 수학적 생명표로 보험료를 계산하는 최초의 생명보험 회사가 생기며 보험 수리학(계리학)이 시작됩니다.
세계 최초의 근대적 선물 거래소.
에도 시대 무사들은 쌀로 녹봉을 받았고, 오사카 상인들은 아직 수확하지 않은 쌀에 대한 권리 증서를 사고팔았습니다. 막부가 공식 승인한 도지마 쌀 시장은 실물을 주고받지 않고 장부로 정산하는 표준화된 계약, 증거금, 청산 기구까지 갖췄습니다.
기댓값이 무한대인데 아무도 큰돈을 내지 않는 게임.
다니엘 베르누이는 동전을 던져 처음 앞면이 나오는 회차에 따라 상금이 두 배씩 커지는 게임의 기댓값이 무한대인데도 아무도 큰돈을 내지 않는다는 역설을 다뤘습니다. 사람들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에서 얻는 만족(효용)의 기댓값을 따지며, 가진 게 많을수록 추가 만족은 줄어든다는 설명입니다. 위험 회피의 수학적 설명이며, 200년 뒤 기대효용 이론과 포트폴리오 이론의 뿌리가 됩니다.
대영제국을 만든 국채.
영국은 여러 국채를 합쳐 만기 없이 연 3% 이자를 영원히 주는 콘솔을 만들었습니다. 19세기 내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금융 자산이었고, 영국은 이 낮은 금리의 국채 시장 덕분에 나폴레옹 전쟁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버튼우드 나무 아래의 24명.
주식 중개인 24명이 월스트리트의 버튼우드 나무 아래서 수수료와 거래 규칙에 합의했습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의 시작이며, 첫 거래 대상은 독립전쟁 때 진 빚을 정리한 미국 국채였습니다.
커피하우스의 거래가 공식 거래소가 되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국경을 넘는 금융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시카고에서 곡물 선물이 표준화되고, 전신이 주가를 실시간으로 퍼뜨립니다.
커피하우스에서 공식 거래소로.
왕립 거래소에서 무례하다고 쫓겨난 주식 중개인들은 조너선의 커피하우스로 옮겨 가 주가 목록을 붙여 놓고 거래했습니다. 이것이 공식 출범한 런던 증권거래소의 기원입니다.
다섯 도시, 다섯 아들.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다섯 아들을 런던, 파리, 빈, 나폴리, 프랑크푸르트에 보내 국경을 넘는 은행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의 전쟁 자금을 대륙으로 전달했습니다. 워털루 전투 결과를 먼저 알고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만들어진 신화에 가깝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이 19세기 유럽 국채 시장을 지배한 것은 사실입니다. 1875년 영국 정부가 수에즈 운하 지분을 사들일 때도 자금을 댔습니다.
농부는 가격을 확정하고, 투기꾼은 위험을 떠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가 설립되고 1860년대 표준화된 곡물 선물 계약이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수확 전에 가격을 미리 확정해 폭락 위험을 피하고, 투기꾼은 그 위험을 떠안는 대가로 이익을 노렸습니다. 시카고는 지금까지 세계 파생상품 거래의 중심입니다.
거래소에 가지 않아도 주가를 보다.
시장 전체를 하나의 숫자로.
찰스 다우가 대표 기업 12개의 주가 평균으로 시장 전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지수를 만들었습니다. 시장을 하나의 숫자로 요약한 최초의 지수입니다.
한 박사 논문이 주가 변동을 무작위 과정으로 모델링하며 금융 수학을 시작했지만 50년 동안 잊힙니다. 대폭락은 증권 규제와 가치 투자를 낳고, 수학자들은 훗날 금융의 핵심 도구가 될 확률론의 기초를 놓습니다.
아인슈타인보다 5년 앞선 브라운 운동.
푸앵카레의 제자 루이 바슐리에는 파리 증권거래소의 국채 옵션 가격을 연구하며 주가 변동을 무작위 과정으로 모델링했습니다. 가격의 미래 변화는 예측할 수 없고 변동 폭은 시간의 제곱근에 비례해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옵션 가격 공식을 유도했고, 그 과정에서 아인슈타인보다 5년 먼저 브라운 운동의 수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금융을 하찮게 여겼고, 논문은 50년 동안 잊혔다가 새뮤얼슨에 의해 재발견됩니다. 지금 그는 수리금융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브라운 운동을 엄밀한 수학으로.
고점을 회복하는 데 25년.
빚을 내 열 배 레버리지로 주식을 사던 광란의 20년대가 ‘검은 목요일’과 ‘검은 화요일’로 끝났습니다. 다우지수는 1932년까지 고점 대비 약 89% 떨어졌고, 1929년 고점을 다시 회복한 것은 1954년이었습니다.
예금자의 돈으로 주식 도박을 하지 마라.
의회 청문회에서 은행들의 부실 주식 떠넘기기와 주가 조작이 드러났습니다. 증권법과 증권거래법으로 기업의 재무 공시가 의무화되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생겼으며, 글래스-스티걸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했습니다. 예금보험이 생겨 뱅크런이 크게 줄었습니다. 같은 해 카울스는 투자 정보지의 추천이 무작위로 고른 것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통계로 보였습니다.
미스터 마켓과 안전마진.
대폭락으로 큰 손실을 본 벤저민 그레이엄은 데이비드 도드와 함께, 기업의 장부와 실적을 분석해 내재가치보다 충분히 싸게 사야 한다는 가치 투자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시장을 매일 기분에 따라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조울증 동업자 ‘미스터 마켓’에 비유했습니다. 그의 제자가 워런 버핏입니다.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사람을 고르라.
케인스는 주식 투자를 신문의 미인 대회에 비유했습니다. 상은 다른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른 사진을 맞힌 사람이 받으니, 참가자들은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사람을, 더 나아가 남들이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것’이라 생각할 사람을 고르게 됩니다. 주가도 기업의 실제 가치가 아니라 예상에 대한 예상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들쭉날쭉한 경로를 위한 미적분.
일본의 이토 기요시는 브라운 운동처럼 어디서도 미분할 수 없는 경로에 대한 적분과 미분 법칙을 만들었습니다(이토 적분, 1951년 이토의 보조정리). 순수 수학으로 연구한 이 이론은 30년 뒤 블랙-숄즈 공식의 핵심 도구가 되고, 이토는 그것이 월스트리트에서 쓰인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합니다. 같은 해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은 베르누이의 효용 개념을 공리화한 기대효용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위험이 처음으로 숫자로 측정되고, 분산투자와 베타라는 개념이 생깁니다. 시장은 예측할 수 없다는 랜덤워크와 효율적 시장 가설이 정리되는 한편, 큰 변동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난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도박장의 수학이 월스트리트로 옮겨 갑니다.
위험을 처음으로 숫자로.
대학원생 해리 마코위츠는 투자자가 신경 쓰는 것이 기대수익률(평균)과 위험(분산)이라고 정의하고, 자산들이 완벽하게 같이 움직이지 않는 한 섞을수록 전체 위험이 줄어든다는 분산투자의 원리를 수학으로 보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자산의 위험이 아니라 다른 자산과의 공분산입니다. 논문 심사 때 밀턴 프리드먼이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수학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악마가 매주 무작위로 숫자를 뽑는 것 같다.
통계학자 켄들은 주가와 상품 가격의 변화를 분석해 과거 변화로 미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1959년 물리학자 오스본은 바슐리에를 모른 채 주가의 로그 변화량이 브라운 운동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독립적으로 발견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자산을 가장 빨리 불리는 베팅 비율.
벨 연구소의 켈리는 섀넌의 정보이론을 도박에 적용해, 유리한 내기에서 매번 자산의 몇 퍼센트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로그 자산의 기댓값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베르누이의 로그 효용과 같은 수학입니다.
같은 현금흐름은 같은 가격이어야 한다.
모딜리아니와 밀러는 마찰이 없다면 기업이 빚으로 조달하든 주식으로 조달하든 기업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증명에 쓰인 차익거래 논리는 이후 파생상품 가격 결정의 핵심 방법이 됩니다. 같은 해 토빈은 무위험 자산을 더하면 모든 투자자가 같은 위험자산 포트폴리오를 갖고 그 비율만 조절하면 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블랙잭에서 월스트리트로.
MIT의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는 섀넌과 함께 룰렛 결과를 예측하는 웨어러블 컴퓨터를 만들기도 했고, 블랙잭 카드 카운팅으로 확률이 유리한 순간을 찾고 켈리 기준으로 베팅하는 방법을 공개해 카지노들이 규칙을 바꾸게 했습니다. 그는 곧 ‘세상에서 가장 큰 카지노’인 월스트리트로 눈을 돌립니다.
큰 폭락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온다.
만델브로는 100년 넘는 면화 가격 데이터로 가격 변화가 정규분포가 아니며, 큰 변동이 정규분포의 예측보다 훨씬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정규분포가 계산하기 너무 편했기 때문에 주류 금융 이론은 이 경고를 오랫동안 무시했고, 그 대가를 1987년, 1998년, 2008년에 치릅니다.
기대수익률은 베타로 정해진다.
윌리엄 샤프 등은 모든 투자자가 마코위츠식으로 행동하면 공통 포트폴리오가 시장 전체가 된다는 데서 출발해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분산투자로 없앨 수 있는 개별 기업 위험은 보상받지 못하고, 시장 전체와 함께 움직이는 정도(베타)만 보상받는다는 결론입니다.
무작위성은 효율성의 증거다.
새뮤얼슨은 모든 정보가 가격에 반영돼 있다면 앞으로의 가격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새 소식에만 반응하므로 무작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유진 파마는 이를 시장 가격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반영하므로 공개 정보로는 지속적으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로 정리했습니다(1970년 체계화).
블랙-숄즈를 먼저 알고 있던 사람.
소프는 1967년 『시장을 이겨라』에서 워런트의 적정 가격을 계산하고 위험을 상쇄하는 헤지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블랙-숄즈와 거의 같은 공식을 먼저 알고 투자에 쓰고 있었지만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세운 프린스턴-뉴포트 파트너스는 19년간 한 번도 손실 연도 없이 높은 수익을 냈습니다.
닉슨 쇼크 이후 환율과 금리가 출렁이자 위험을 피할 수단이 필요해졌고, 블랙-숄즈 공식이 옵션 거래소 개장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론은 인덱스 펀드라는 상품이 되고, 증권화와 정크본드가 금융을 바꿉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모델로 움직인 날, 시장이 하루에 22.6% 무너집니다.
대출을 묶어 채권으로 팔다.
미국 정부 기관 지니메이가 수많은 주택담보대출을 묶어 그 원리금을 받을 권리를 채권으로 파는 주택저당증권을 처음 발행했습니다. 은행은 대출을 장부에 들고 있는 대신 팔고 다시 대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증권화가 2008년 위기의 씨앗이 됩니다.
곡물 대신 돈 자체를 선물로.
변동환율의 시대가 오자 시카고 상업거래소의 레오 멜라메드는 밀턴 프리드먼의 보고서를 근거로 통화 선물을 만들었습니다. 금리 선물(1975), 주가지수 선물(1982)이 뒤따랐습니다.
공식에서 기대수익률이 사라지다.
블랙, 숄즈, 머튼은 옵션과 주식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시시각각 조정하면 위험이 전혀 없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고, 차익거래가 없다면 그것은 무위험 이자율만큼만 벌어야 한다는 데서 옵션 가격의 편미분방정식을 얻었습니다. 변수를 바꾸면 바슐리에가 썼던 물리학의 열 방정식이 됩니다. 놀랍게도 공식에서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사라져, 전망이 서로 달라도 모두 같은 가격에 동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두 번 거절당한 논문이 출판되기 직전 세계 최초의 옵션 거래소가 문을 열었고, 트레이더들은 공식이 내장된 계산기를 들고 거래장에 들어갔습니다. 사회학자 매켄지는 이 모델이 시장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만들었다며 ‘카메라가 아니라 엔진’이라 표현했습니다. 숄즈와 머튼은 1997년 노벨상을 받았고, 블랙은 그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글의 바보짓.
효율적 시장 가설이 맞다면 비싼 수수료를 내고 시장을 이기려 하기보다 시장 전체를 그대로 사는 게 낫습니다. 존 보글의 뱅가드가 S&P 500을 그대로 따라가는 최초의 개인용 인덱스 펀드를 내놓자 업계는 ‘보글의 바보짓’이라 조롱했습니다. 수십 년 뒤 대부분의 적극적 운용 펀드가 장기적으로 인덱스를 이기지 못한다는 데이터가 쌓였습니다. 학계 이론이 금융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꾼 가장 큰 사례입니다.
손실은 이익보다 두 배 아프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사람들이 기준점 대비 이익과 손실로 판단하고 손실을 이익보다 약 두 배 크게 느낀다는 전망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해리슨과 크렙스는 차익거래가 없다면 모든 자산이 무위험 이자율만큼 오른다고 가정한 가상의 확률 세계에서 기댓값을 계산해 할인하면 그것이 가격이라는 위험중립 가격결정을 정립했습니다. 파스칼과 페르마의 기댓값이 완성된 형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자를 맞바꾸다, 그리고 너무 크게 출렁이는 주가.
살로몬 브러더스의 주선으로 IBM과 세계은행이 서로 다른 통화로 진 빚의 이자를 맞바꾸는 대형 스와프 계약을 맺었습니다. 스와프 시장은 이후 수백조 달러 규모로 커집니다. 같은 해 실러는 주가가 배당이라는 실제 가치의 변화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게 변동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큰 변동 뒤에는 큰 변동이 온다.
로버트 엥글은 오늘의 변동성이 과거 충격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ARCH 모델을 만들었고, 1986년 볼러슬레브가 GARCH로 일반화했습니다. 변동성이 몰려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 모델은 지금도 위험 관리의 기본 도구이며, 엥글은 2003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함께 움직이는 두 주식의 차이를 노리다.
물리학 연구 자리가 줄어들면서 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월스트리트로 가 ‘로켓 과학자’로 불렸고, 확률미분방정식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이 금융의 표준 도구가 됐습니다. 모건스탠리의 팀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두 주식의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 비싼 쪽을 팔고 싼 쪽을 사는 페어 트레이딩을 체계화했고, 1987년 엥글과 그레인저의 공적분 이론이 그 통계적 기초가 됐습니다.
하루에 22.6%.
주가가 떨어질 때 자동으로 선물을 팔아 손실을 제한하는 포트폴리오 보험이 수백억 달러 규모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10월 19일 주가가 떨어지자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선물을 팔고, 그것이 주가를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일어나 다우지수가 하루에 22.6% 폭락했습니다. 지금도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하루 하락률입니다. 이후 시장은 폭락에 대비하는 옵션에 훨씬 비싼 값을 매기기 시작했고, 하나여야 할 내재 변동성이 웃는 입 모양으로 휘는 ‘변동성 스마일’이 나타났습니다. 시장이 만델브로의 두꺼운 꼬리를 뒤늦게 가격에 반영한 것입니다.
수학자들의 펀드, 그리고 빚으로 사는 기업.
미분기하학자이자 암호 해독가였던 짐 사이먼스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가 메달리온 펀드를 출범시켰습니다. 같은 해 사모펀드 KKR은 마이클 밀컨이 키운 고수익 정크본드 시장을 바탕으로 RJR 나비스코를 약 250억 달러에 인수해 차입매수 붐의 상징이 됐습니다. 국제결제은행은 은행이 위험한 자산을 가질수록 자본을 더 쌓게 하는 바젤 협약을 맺었습니다.
수학자와 음성인식 연구자들이 전례 없는 수익을 내는 한편, CAPM의 한계와 인간의 비합리성이 드러납니다. 위험을 하나의 숫자로 관리하는 방법이 표준이 되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운용하던 펀드가 무너집니다.
베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파마와 프렌치는 시장 베타 외에 기업 규모와 가치 요인을 더한 3요인 모형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모멘텀 현상이 보고되며 요인 투자가 큰 시장이 되지만, 데이터를 뒤지면 우연히 유의해 보이는 요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다중 검정 문제도 커집니다. 같은 해 르네상스는 IBM에서 통계적 음성인식과 기계번역을 연구하던 피터 브라운과 로버트 머서를 영입해, 방대한 데이터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패턴을 찾아 수천 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메달리온 펀드를 수수료 전 연평균 약 66%라는 전례 없는 수익률로 이끌었습니다.
내일 99% 확률로 잃을 수 있는 최대 금액.
J.P. 모건은 회장이 매일 오후 4시 15분까지 은행 전체의 위험을 한 장으로 받아 보고 싶어 하자 개발한 VaR 방법론을 공개했고, 이는 위험 관리의 표준이 됐습니다. 그러나 VaR는 나머지 1%의 경우 얼마나 잃는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같은 해 J.P. 모건은 대출 기업의 부도 위험만 따로 떼어 넘기는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만들었습니다. 해당 채권이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다는 점이 보험과 결정적으로 달랐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펀드가 몇 주 만에.
블랙-숄즈의 숄즈와 머튼이 파트너로 참여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이론적으로 같아야 할 채권 사이의 작은 가격 차이를 엄청난 레버리지로 노렸습니다. 자본 약 47억 달러로 1,0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했습니다. 러시아가 국채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으로 몰리며 평소 서로 상관없던 거래들이 한꺼번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고, 몇 주 만에 자본의 90% 이상을 잃었습니다. 뉴욕 연준이 주요 은행 14곳을 모아 약 36억 달러의 구제를 중재했습니다. 시장은 당신이 버틸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래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66년 만에 사라진 벽.
1933년 대폭락의 교훈으로 세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사이의 벽이 폐지됐습니다. 위기 뒤에는 규제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완화되는 순환입니다.
인터넷 버블이 꺼진 뒤 저금리 속에서 주택 대출이 증권화되어 전 세계로 팔리고, 정규분포 위에 세운 공식이 그 위험을 과소평가합니다. 2008년, 위기의 공통 공식인 레버리지와 유동성과 맹신이 세계 금융을 마비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월스트리트를 죽인 공식?
이익이 없는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했다가 나스닥이 2002년까지 약 78% 폭락했습니다. 같은 해 데이비드 리는 생명보험에서 부부의 사망 상관관계를 다루던 가우스 코퓰라로 수많은 대출이 동시에 부도날 확률을 간단히 계산하는 방법을 발표했고, 이는 부채담보부증권(CDO) 가격 결정의 표준이 됐습니다. 문제는 이 모델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여러 대출이 한꺼번에 부도나는 꼬리 의존성을 거의 0으로 취급했고, 집값이 계속 오르던 짧은 기간의 데이터로 추정됐다는 것입니다.
거래소마다 가격이 잠깐 달라지는 틈.
거래가 완전히 전자화되고 여러 거래소가 경쟁하게 되면서, 같은 주식의 가격이 거래소마다 아주 잠깐 달라지는 틈이 생겼습니다. 이 틈을 백만분의 1초 단위로 먼저 잡는 초단타 매매가 미국 주식 거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동시 부도가 현실이 되다.
저금리 속 집값 폭등기에 대출 회사들은 대출을 바로 팔아넘길 수 있으니 갚을 능력이 의심스러운 서브프라임 대출까지 마구 내줬습니다. 이 대출들은 주택저당증권과 CDO, CDO의 CDO로 묶여 전 세계에 팔렸고 상당수가 AAA 등급을 받았습니다. 집값이 떨어지자 모델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던 동시 부도가 현실이 됐고,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으며, 수천억 달러 규모의 CDS를 판 보험사 AIG는 정부가 850억 달러를 투입해 구제했습니다. 위기 이후 안정이 스스로 불안정을 키운다는 하이먼 민스키가 재조명됐습니다.
1933년의 교훈을 다시 배우며 규제가 돌아오고, 거래는 빛의 속도로 경쟁합니다. 알고리즘끼리의 연쇄 반응이 몇 분 만에 시장을 무너뜨리고, 수수료 없는 앱이 개인 투자자를 다시 불러옵니다.
몇 분 만에 1,000포인트.
미국은 도드-프랭크법으로 은행 자본 규제를 강화하고 장외 파생상품을 중앙 청산소로 거치게 했으며 예금자의 돈으로 자기 계정 투자를 못 하게 했습니다(볼커 룰). 같은 해 5월 6일 오후 다우지수가 몇 분 만에 약 1,000포인트 폭락했다가 회복하는 플래시 크래시가 일어났고, 일부 주식은 1센트에 거래됐습니다. 한 회사는 시카고와 뉴저지 사이 왕복 시간을 몇 밀리초 줄이려고 약 3억 달러를 들여 광케이블을 새로 깔았고, 곧 빛이 공기 중에서 더 빠르다는 점을 이용한 마이크로파 송신탑 경쟁이 뒤따랐습니다.
45분 만에 4억 4,000만 달러.
나이트 캐피털은 오래된 코드가 실수로 다시 활성화되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45분 만에 4억 4,000만 달러를 잃고 사실상 파산했습니다. 알고리즘 시대의 위험입니다.
같은 질문, 반대의 답.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파마와 시장이 비합리적 거품에 휩쓸린다는 실러가 같은 해 노벨 경제학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금융학의 현재 상태를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주식 거래 수수료가 0이 되다.
2013년 로빈후드가 수수료 없는 주식 거래 앱을 내놓은 데 이어, 2019년 10월 미국 대형 증권사들이 잇따라 수수료를 0으로 내렸습니다. 로빈후드는 대신 고객 주문을 초단타 매매 회사에 넘기는 대가로 돈을 벌었습니다.
레딧의 개인 투자자들이 헤지펀드를 무너뜨리고, SNS로 퍼진 소문이 몇 시간 만에 은행을 쓰러뜨립니다. 인덱스 펀드가 적극적 운용을 넘어서고, 대체 데이터와 AI가 퀀트 투자의 새 도구가 됩니다.
400년 전 공매도 공격의 정반대.
레딧 커뮤니티의 개인 투자자들이 헤지펀드들이 대거 공매도한 게임스톱 주식을 집단으로 사들여 주가가 몇 주 만에 수십 배로 폭등했고, 공매도한 헤지펀드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삭 르 메르의 공매도 공격이 정반대 방향으로 재연된 ‘밈 주식’의 시대입니다. 몇 달 뒤 한 가족 투자회사 아케고스가 스와프로 숨긴 레버리지가 무너지며 거래 은행들이 100억 달러 넘게 잃었습니다.
하루 만에 420억 달러.
금리 상승으로 채권 투자에서 큰 평가 손실을 봤다는 소식이 서로 긴밀히 연결된 스타트업 예금자들 사이에 SNS로 퍼지자, 실리콘밸리은행에 하루 만에 약 420억 달러의 인출 요청이 몰려 파산했습니다. 휴대폰과 SNS 시대의 뱅크런은 몇 주가 아니라 몇 시간 만에 일어납니다. 며칠 뒤 167년 역사의 크레디트스위스도 신뢰를 잃고 UBS에 긴급 인수됐습니다.
보글의 바보짓이 이기다.
미국에서 인덱스(패시브) 펀드 자산이 적극적 운용 펀드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블록체인 위에 펀드와 국채를 디지털 토큰으로 발행하는 토큰화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 하나가 몇 시간 만에 전 세계 시장으로.
4월 미국의 대규모 관세 발표 직후 S&P 500 지수가 이틀 만에 약 10% 떨어지는 등 시장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퀀트 투자는 위성 사진, 결제 데이터, 뉴스 텍스트 같은 대체 데이터와 머신러닝으로 확장됐지만, 신호보다 잡음이 극도로 크고 패턴이 발견되는 순간 사라지는 금융 데이터에서 과적합이 가장 큰 적입니다. 르네상스가 음성인식 연구자들을 영입했던 것처럼, 지금은 대형 언어모델 연구자들이 퀀트 회사로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