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새긴 눈금, 가장 오래된 셈의 흔적 중 하나.
콩고의 이상고 지역에서 발견된 뼈에는 여러 묶음의 눈금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순한 개수 기록이라는 해석부터 달력이나 소수 목록이라는 대담한 해석까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선사시대의 눈금부터 컴퓨터가 검증하는 증명까지
문자보다 수가 먼저였습니다. 사람들은 뼈와 돌, 점토에 표시를 남기며 개수를 세고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해석은 상당 부분 추측에 기대고 있습니다.
뼈에 새긴 눈금, 가장 오래된 셈의 흔적 중 하나.
콩고의 이상고 지역에서 발견된 뼈에는 여러 묶음의 눈금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순한 개수 기록이라는 해석부터 달력이나 소수 목록이라는 대담한 해석까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곡식과 가축을 세는 작은 점토 조각.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는 원뿔, 구, 원반 모양의 점토 토큰으로 물건의 개수를 표시했습니다. 이 토큰을 점토 봉투에 넣고 겉에 모양을 찍던 관습이 훗날 숫자와 문자로 발전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학은 토지 측량, 세금, 건축, 천문 계산을 위한 기술이었습니다. 놀라울 만큼 정교했지만, ‘왜 그런가’를 증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일강의 범람이 기하학을 낳다.
이집트는 1, 10, 100… 을 서로 다른 그림 기호로 쓰는 10진법을 썼습니다. 해마다 범람으로 지워지는 농지 경계를 다시 재고, 피라미드를 짓는 일이 실용 기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자리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숫자.
바빌로니아는 60진법에 자릿값 개념을 적용하고, 이를 분수에까지 확장했습니다. 덕분에 근대의 소수 표기에 맞먹는 계산이 가능했습니다. 1시간이 60분, 원이 360도인 것은 이 체계의 흔적입니다.
사각뿔대의 부피를 정확히 구하다.
이집트의 수학 문제집으로, 위가 잘린 사각뿔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가 실려 있습니다. 공식은 오늘날의 것과 정확히 같지만,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피타고라스 세 수의 표, 그리고 소수점 여섯 자리의 √2.
점토판 플림프턴 322에는 a² + b² = c²을 만족하는 정수 쌍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YBC 7289에는 정사각형의 대각선과 함께 √2의 근삿값이 소수점 아래 여섯 자리 정도의 정밀도로 적혀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보다 천 년 이상 앞선 기록입니다. 바빌로니아는 이차방정식도 오늘날 근의 공식과 같은 절차로 풀었습니다.
서기관 아메스가 베낀 이집트 수학 교과서.
84개 문제로 이루어진 이 파피루스는 이집트 수학의 대표 자료입니다. 분자가 1인 단위분수로 모든 분수를 표현했고, 원의 넓이는 지름의 8/9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으로 계산했습니다. 원주율로 치면 약 3.16입니다.
그리스에서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수학은 계산 기술에서 ‘증명’의 학문이 되고, 수는 세계를 설명하는 철학이 됩니다. 그리고 그 철학을 흔드는 첫 위기가 찾아옵니다.
기하학에 처음으로 ‘증명’을 요구한 사람.
전승에 따르면 탈레스는 지름에 대한 원주각이 직각이라는 사실 등을 논리적으로 보였고, 일식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다만 초기 그리스 수학자들의 업적은 대부분 수백 년 뒤의 기록에 의존합니다.
“만물은 수다.”
피타고라스와 그 제자들은 음정의 조화부터 천체의 운동까지 모든 것이 정수의 비로 설명된다고 믿었습니다. 수는 계산 도구를 넘어 우주의 원리가 됐습니다. 그의 이름이 붙은 정리는 이미 바빌로니아에서 쓰였지만, 이를 일반적으로 증명한 것은 그리스 수학의 업적으로 여겨집니다.
정사각형의 대각선은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다.
한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2)이 어떤 두 정수의 비로도 나타낼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만물은 정수의 비’라는 세계관이 무너지는 순간으로, 비밀을 누설한 히파소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까지 남았습니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제논은 무한히 나눌 수 있는 운동이 모순을 낳는다는 역설로 무한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같은 시기 자와 컴퍼스만으로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 만들기, 부피가 두 배인 정육면체 만들기, 각을 삼등분하기라는 세 문제가 제기됩니다. 세 문제 모두 19세기에야 불가능하다고 증명됩니다.
무리수의 충격 이후 그리스 수학은 수 대신 선분과 넓이, 부피를 다루는 기하학으로 방향을 틉니다. 공리에서 정리를 끌어내는 수학의 표준 형식이 이때 완성됩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
입구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플라톤의 학교는 당대 수학 연구의 중심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수학을 감각 너머의 진리에 이르는 훈련으로 여겼습니다.
무리수도 다룰 수 있는 비례, 적분의 원형.
에우독소스는 통약 불가능한 양 사이에도 성립하는 비례 이론을 세워 무리수의 위기를 기하학적으로 극복했습니다. 도형을 점점 작은 조각으로 채워 넓이를 구하는 실진법(착출법)은 2,000년 뒤 적분의 원형이 됩니다.
다섯 개의 공준에서 수백 개의 정리를.
유클리드는 기존의 기하학과 수론을 몇 개의 정의와 공리, 공준에서 출발해 차례로 증명하는 체계로 정리했습니다. 독창적 발견보다 구조가 위대한 책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은 판을 거듭했다고 할 만큼 2,000년 넘게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소수가 무한히 많다는 증명도 이 책에 있습니다.
고대 최고의 수학자.
정96각형으로 3 10/71 < π < 3 1/7을 보였고, 포물선 조각의 넓이와 구의 부피를 구했습니다. 구와 그것을 감싸는 원기둥의 부피비가 2:3이라는 발견을 가장 자랑스러워해 묘비에 새기게 했다고 합니다. 1906년 기도서 아래에서 발견된 『방법』은 그가 무한히 얇은 조각을 더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먼저 ‘발견’했음을 보여줍니다.
막대기 그림자로 지구 둘레를 재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 에라토스테네스는 두 도시에서 같은 날 정오의 그림자 각도를 비교해 지구 둘레를 놀랄 만큼 정확하게 계산했습니다. 소수를 걸러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도 그의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타원, 포물선, 쌍곡선을 하나의 원뿔에서.
원뿔을 자르는 각도에 따라 세 곡선이 생긴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지금 쓰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800년 뒤 케플러가 행성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발견할 때 이 이론이 그대로 쓰입니다.
그리스 수학은 천문학과 측량 같은 응용 쪽으로 기울고, 중국에서는 독자적인 계산 수학이 꽃핍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학문 전통은 점차 저물어 갑니다.
행렬 소거법으로 연립방정식을 풀다.
여러 세대의 중국 학자들이 쌓아 1세기경 오늘날의 형태가 된 수학 문제집입니다. 계산 막대를 표처럼 배열해 연립일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은 오늘날의 가우스 소거법과 같고, 음수도 자연스럽게 다뤘습니다.
최초의 본격적인 삼각함수표.
『알마게스트』에서 원의 중심각에 대응하는 현의 길이를 0.5도 간격으로 정리했습니다. 천체 위치 계산을 위한 이 표는 이후 1,400년 동안 천문학의 기초가 됩니다.
미지수를 기호로 쓰기 시작하다.
방정식의 정수 해와 유리수 해를 찾는 문제들을 모은 책으로, 미지수와 거듭제곱을 약식 기호로 썼습니다. 1,400년 뒤 페르마가 이 책의 여백에 그 유명한 메모를 남깁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마지막 수학자.
디오판토스와 아폴로니오스의 저작에 주석을 달고 가르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415년 정치적·종교적 갈등 속에서 폭도에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죽음은 고대 알렉산드리아 학문의 쇠퇴를 상징하게 됩니다.
서로마가 무너진 뒤 수학의 중심은 인도와 이슬람 세계로 옮겨 갑니다. 0과 10진 위치기수법이 완성되고, ‘대수(algebra)’라는 학문이 이름을 얻습니다.
π ≈ 355/113, 천 년 가까이 깨지지 않은 정밀도.
중국의 조충지는 원주율을 3.1415926과 3.1415927 사이로 구했고, 355/113이라는 매우 정확한 분수 근삿값을 제시했습니다. 이 정밀도는 약 900년 동안 세계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현 대신 반현, 사인의 기원.
인도의 아리아바타는 그리스의 ‘현’ 대신 그 절반인 ‘반현’을 써서 사인값의 표를 만들었습니다. 이 말이 아랍어와 라틴어로 옮겨지며 오늘날의 ‘sine’이 됩니다.
0을 하나의 수로 다루다.
브라마굽타는 0을 자리 표시가 아닌 하나의 수로 보고, 0과 음수의 덧셈·뺄셈·곱셈 규칙을 정리했습니다. 인도에서 완성된 0을 포함한 10진 위치기수법은 이슬람 세계를 거쳐 전 세계 표준이 됩니다.
‘algebra’와 ‘algorithm’의 어원.
바그다드 ‘지혜의 집’의 학자 알콰리즈미는 방정식을 정리하고 푸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책 제목의 ‘al-jabr(복원)’에서 algebra가, 그의 이름에서 algorithm이 나왔습니다. 이슬람 학자들은 그리스와 인도의 문헌을 번역·보존하며 둘을 잇는 다리가 됐습니다.
시인이자 수학자, 원뿔곡선으로 방정식을 풀다.
『루바이야트』의 시인으로 더 유명한 하이얌은 삼차방정식을 분류하고, 두 원뿔곡선의 교점으로 해를 구하는 기하학적 방법을 체계화했습니다.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는 시도도 남겼습니다.
아랍어 문헌이 라틴어로 옮겨지며 인도-아라비아 숫자와 대수가 유럽에 들어옵니다. 같은 시기 중국과 인도 남부에서도 놀라운 성과가 이어집니다.
유럽에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퍼뜨리다.
북아프리카에서 상인 교육을 받은 피보나치는 0을 포함한 새 숫자 체계가 로마 숫자보다 계산에 얼마나 편리한지 보여줬습니다. 토끼 번식 문제에서 나온 수열이 그의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파스칼의 삼각형’과 고차방정식.
13~14세기 중국 수학은 고차방정식을 수치적으로 푸는 방법(오늘날의 호너법)과 이항계수의 삼각형을 다뤘습니다. 주세걸은 미지수가 넷인 연립 고차방정식까지 다뤘고, 이 삼각형은 그보다 앞선 양휘의 책에도 실려 있습니다.
변화를 그래프로 그리고, 조화급수의 발산을 증명하다.
프랑스의 니콜 오렘은 속도처럼 변하는 양을 가로·세로 길이로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좌표 그래프의 아이디어를 앞당겼습니다. 1 + 1/2 + 1/3 + … 이 무한히 커진다는 것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흑사병과 백년전쟁으로 유럽의 연구는 다시 끊깁니다.
뉴턴보다 250년 앞선 사인·코사인 급수.
인도 남부 케랄라의 마다바와 그 제자들은 사인, 코사인, 아크탄젠트를 무한급수로 전개하고 이를 이용해 원주율을 계산했습니다. 이 성과는 오랫동안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소수점 아래 16자리.
사마르칸트 천문대의 알카시는 3×2²⁸각형을 이용해 원주율을 소수점 아래 16자리까지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이 기록은 약 170년 동안 깨지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삼차·사차방정식의 해법이 발견되면서 근대 수학이 시작됩니다. 허수가 처음 등장하고, 수학은 문자 기호라는 새 언어를 얻습니다.
삼차·사차방정식의 일반 해법.
델 페로가 처음 발견하고, 타르탈리아가 다시 발견해 비밀로 지키던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카르다노가 제자 페라리의 사차방정식 해법과 함께 출판했습니다. 약속을 어긴 출판으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이 책은 근대 수학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음수의 제곱근으로 계산하다.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쓰다 보면 실제 답이 실수인데도 중간에 음수의 제곱근이 나타났습니다. 봄벨리는 이 ‘불가능한 수’의 계산 규칙을 정리해, 그것으로 올바른 실수 답을 얻을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10진 소수를 일상의 계산으로.
미지수는 모음, 아는 수는 자음으로.
프랑스의 비에트는 미지수와 이미 아는 수를 모두 문자로 나타내 ‘특정한 방정식’이 아닌 ‘일반적인 방정식’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대수가 개별 문제 풀이에서 일반 이론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곡선을 방정식으로 바꾸는 해석기하학이 나오고, 그 위에서 접선과 넓이를 다루는 미적분이 탄생합니다. 수학이 물리학의 언어가 됩니다.
곱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표.
네이피어의 로그는 천문학자들의 계산 시간을 크게 줄였습니다. 라플라스는 훗날 로그가 천문학자의 수명을 두 배로 늘렸다고 평했습니다. 로그표와 계산자는 전자계산기가 나오기 전까지 350년 넘게 쓰였습니다.
곡선을 방정식으로, 방정식을 곡선으로.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의 부록 「기하학」에서, 페르마는 거의 같은 시기 독립적으로, 좌표를 이용해 도형 문제를 대수 문제로 바꾸는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 이후 따로 놀던 대수와 기하가 하나가 됩니다.
“여백이 좁아 증명을 적지 않는다.”
페르마는 디오판토스의 『산술』 여백에 n이 3 이상이면 xⁿ + yⁿ = zⁿ을 만족하는 자연수 해가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이 말을 남겼습니다. 이 문제는 358년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힙니다.
도박이 중단되면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파스칼과 페르마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중단된 게임의 공정한 분배 문제를 풀며 확률 계산의 기본 원리가 세워졌습니다. 3년 뒤 하위헌스가 첫 확률론 책을 씁니다.
흑사병 휴교 중에 만든 미적분.
케임브리지가 흑사병으로 문을 닫은 동안 고향에 머문 뉴턴은 변화율(유율)을 다루는 방법을 만들고, 미분과 적분이 서로 역연산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결과를 오랫동안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dx, ∫ — 지금도 쓰는 미적분 기호.
라이프니츠는 독립적으로 미적분을 만들고 먼저 출판했습니다. 그의 기호는 뛰어나 대륙 수학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뒤이은 뉴턴 측과의 우선권 논쟁으로 영국 수학은 한 세기 가까이 대륙과 고립됩니다.
미적분이 쏟아내는 결과로 수학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이 시대의 중심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오일러가 있습니다. 다만 무한소의 기초는 여전히 애매했습니다.
야코프 베르누이, 많이 던질수록 확률에 가까워진다.
사후 출판된 『추측술』에서 시행 횟수가 많아질수록 상대 빈도가 실제 확률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20년 뒤 드무아브르는 이항분포가 종 모양 곡선(정규분포)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보입니다.
“사라진 양의 유령.”
철학자 버클리 주교는 미적분이 0이면서 0이 아닌 무한소에 기대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미적분은 잘 작동했지만, 왜 작동하는지는 아무도 엄밀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일곱 개의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널 수 있을까?
오일러는 땅의 모양과 거리는 무시하고 ‘무엇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만 남겨 이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했습니다. 그래프 이론의 출발점이자, 모양 대신 연결 구조를 보는 위상수학의 씨앗입니다.
함수 중심의 해석학, 그리고 e^(ix) = cos x + i sin x.
오일러는 해석학을 ‘함수’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지수함수와 삼각함수를 복소수로 연결했습니다. e, i, π, f(x), Σ 같은 표기도 그를 통해 자리 잡았습니다. 말년에 시력을 잃은 뒤에도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모든 다항방정식은 복소수 해를 가진다.
가우스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정리의 증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평생 이 정리에 대해 여러 개의 증명을 남겼습니다. 같은 시대 프랑스에서는 혁명 정부가 미터법을 제정하고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세워 라그랑주, 라플라스, 몽주가 이끄는 수학의 중심이 됩니다.
미적분의 기초를 엄밀하게 다시 세우는 작업이 시작되고, 2,000년간 자명하다고 여겨진 유클리드 기하학이 유일한 기하학이 아님이 밝혀집니다. 방정식 이론은 ‘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습니다.
수학의 왕, 정수론을 체계화하다.
24살의 가우스는 합동식 등 정수론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했습니다. 19살에 정십칠각형을 자와 컴퍼스로 작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그는 미분기하학, 통계, 천문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지만, 완벽하지 않은 결과는 출판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발견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극한, 연속, 수렴을 엄밀하게.
코시는 무한소 대신 극한으로 미적분의 기본 개념을 정의하려 했습니다. 이 작업은 바이어슈트라스의 ε-δ 정의로 완성되며, 오늘날 해석학 교과서의 형식이 됩니다.
5차 이상의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다.
노르웨이의 젊은 수학자 아벨은 사칙연산과 거듭제곱근만으로 일반 5차방정식을 풀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가난과 병 속에서 26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행선이 여러 개인 세계도 모순이 없다.
로바쳅스키와 보여이는 각자 독립적으로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준을 바꿔도 모순 없는 기하학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가우스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지만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공리는 자명한 진리’라는 믿음이 깨집니다.
결투 전날 밤 정리한 군론.
20살의 갈루아는 결투로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자신의 연구를 편지로 정리했습니다. 방정식의 해들 사이의 대칭을 ‘군’으로 분석해 어떤 방정식이 근의 공식을 갖는지 판정하는 그의 이론은 사후 수십 년 뒤에야 제대로 이해됩니다.
곱셈의 교환법칙을 버린 수.
해밀턴은 산책 중 떠오른 공식 i² = j² = k² = ijk = −1을 더블린의 다리 돌에 새겼다고 전해집니다. ab ≠ ba일 수 있는 수 체계는 ‘수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고, 오늘날 3D 그래픽과 로봇 공학에서 회전을 계산하는 데 쓰입니다.
논리를 계산으로.
조지 불은 ‘그리고’, ‘또는’, ‘아니다’ 같은 논리를 대수 방정식처럼 다루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90년 뒤 섀넌이 이를 전기 회로에 적용하면서 모든 디지털 컴퓨터의 기초가 됩니다.
수학은 ‘수와 도형’을 다루는 학문에서 ‘구조’를 다루는 학문으로 바뀝니다. 공간과 무한, 대칭이 새로운 언어로 다시 정의됩니다.
휘어진 공간의 기하학.
리만은 교수 자격 강연에서 곡률이 지점마다 달라질 수 있는 일반적인 공간의 기하학을 제시했습니다. 60년 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바로 이 언어로 쓰입니다.
소수의 분포에 숨은 질서.
리만은 단 한 편의 정수론 논문에서 소수의 분포가 제타 함수의 영점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그 영점들이 모두 한 직선 위에 있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수학의 가장 중요한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실수를 정의하고, 기하학을 분류하다.
데데킨트는 유리수를 둘로 자르는 ‘절단’으로 실수를 엄밀히 정의했고, 바이어슈트라스는 어디서도 미분할 수 없는 연속함수를 제시해 직관의 한계를 보였습니다. 같은 해 클라인은 여러 기하학을 ‘어떤 변환에 대해 변하지 않는 성질’로 분류하는 에를랑겐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무한에도 크기가 다르다.
칸토어는 자연수와 실수가 모두 무한하지만 실수가 ‘더 많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1891년의 대각선 논법으로 더 간결하게 다시 보였습니다. 일부 수학자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그가 만든 집합론은 20세기 수학 전체의 언어가 됩니다.
늘리고 구부려도 변하지 않는 성질.
푸앵카레는 도형을 찢지 않고 연속적으로 변형해도 남는 성질을 연구하는 위상수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기한 질문은 훗날 ‘푸앵카레 추측’으로 100년 넘게 남습니다.
수학 전체를 집합론과 논리 위에 완전하게 세우려는 시도가 이어지지만, 역설과 불완전성 정리가 그 꿈에 한계를 긋습니다. 그 과정에서 확률론은 공리화되고, 계산 가능성 이론이 컴퓨터 과학을 낳습니다.
20세기 수학의 지도.
파리 국제수학자대회에서 힐베르트는 새 세기에 풀어야 할 23개의 문제를 제시했습니다. 연속체 가설, 리만 가설 등이 포함된 이 목록은 한 세기 동안 수학 연구의 방향을 이끌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의 집합.
러셀은 이런 집합을 생각하면 모순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고, 막 책을 마무리하던 프레게에게 편지로 알렸습니다. 수학의 토대로 여겨진 집합론 자체에 금이 간 것입니다. 이후 공리적 집합론과 『수학 원리』 같은 대응이 이어집니다.
더 많은 함수를 적분할 수 있는 새 적분.
르베그는 구간을 나누는 대신 함수값의 범위를 나누는 방식으로 적분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이 ‘측도’ 개념은 현대 해석학과 확률론의 기초가 됩니다.
독학한 천재가 케임브리지로 보낸 공식들.
인도의 사무원 라마누잔이 보낸 편지에 담긴 놀라운 공식들을 본 하디는 그를 케임브리지로 초청했습니다. 정식 교육 없이 직관으로 수천 개의 공식을 남긴 그는 32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구체적인 수가 아니라 구조 자체를 연구하다.
에미 뇌터는 환과 이데알의 이론을 정립해 현대 추상대수학의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대칭과 보존 법칙을 잇는 ‘뇌터 정리’로 물리학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정식 교수직을 얻지 못했습니다.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
괴델은 산술을 포함하는 무모순 형식 체계에는 그 안에서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반드시 있고, 체계는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수학 전체를 완전한 형식 체계로 세우려던 힐베르트의 계획에 원리적인 한계를 그었습니다.
확률을 측도론 위에 세우다.
콜모고로프는 확률을 측도의 언어로 공리화해 확률론을 엄밀한 수학 분야로 만들었습니다. 이 무렵 피셔, 네이만, 피어슨 등이 현대 통계학의 방법론을 세웁니다.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튜링과 처치는 각자 기계적 절차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함을 보이며 힐베르트의 결정 문제에 답했습니다. 튜링의 가상 기계는 컴퓨터 과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대상보다 대상 사이의 관계를.
아일렌베르크와 매클레인은 서로 다른 수학 분야의 구조를 ‘대상과 사상’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묶는 범주론을 내놓았습니다. 같은 시기 부르바키 그룹은 수학 전체를 구조 중심으로 다시 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정보를 비트로 재다.
섀넌은 정보의 양을 엔트로피로 정의하고, 잡음이 있는 통신에서도 오류 없이 보낼 수 있는 한계를 수학적으로 밝혔습니다. 디지털 통신과 데이터 압축의 이론적 기초입니다.
수학은 극도로 전문화되고, 수백 년 묵은 난제들이 하나씩 풀립니다. 컴퓨터가 증명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다.
칸토어가 제기하고 힐베르트 문제의 첫 번째였던 연속체 가설은 표준 집합론의 공리로는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괴델이 앞쪽 절반을, 코언이 나머지 절반을 보였습니다.
수학의 대통일 이론.
랭글랜즈는 베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수론과 표현론, 해석학 사이에 깊은 대응이 있을 것이라는 거대한 추측의 그물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수학의 여러 큰 성과가 이 프로그램의 일부로 이해됩니다.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
만델브로는 어느 배율로 보아도 비슷한 모양이 반복되는 도형에 ‘프랙털’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진 만델브로 집합은 수학을 대중에게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이미지 중 하나가 됩니다.
컴퓨터가 참여한 첫 주요 증명.
어떤 지도든 네 가지 색이면 이웃한 나라를 다른 색으로 칠할 수 있다는 정리를, 아펠과 하켄은 컴퓨터로 수많은 경우를 확인해 증명했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검증할 수 없는 증명을 증명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논쟁이 일었습니다.
소인수분해의 어려움이 비밀을 지키다.
리베스트, 샤미르, 애들먼은 큰 수의 소인수분해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용한 공개키 암호를 발표했습니다. 오랫동안 ‘가장 쓸모없는 수학’으로 불리던 정수론이 인터넷 보안의 기반이 됩니다.
358년 만의 해결.
와일스는 7년 동안 혼자 연구한 끝에 1993년 증명을 발표했지만, 곧 틈이 발견됐습니다. 그는 제자 테일러와 함께 1년 넘게 매달려 틈을 메웠고, 1995년 증명이 출판됐습니다. 이 증명은 타원곡선과 모듈러 형식을 잇는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일부를 이용했습니다.
새 세기의 난제 목록이 발표되고, 큰 추측들이 하나씩 해결됩니다. 증명을 컴퓨터가 검증하는 형식화가 퍼지고, AI가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합니다.
문제 하나에 상금 100만 달러.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리만 가설, P 대 NP 문제 등 7개의 난제에 각각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습니다. 100년 전 힐베르트의 23문제를 의식한 발표였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논문, 거절한 필즈상.
페렐만은 해밀턴의 리치 흐름을 이용해 100년 된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논문들을 학술지 대신 논문 공개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검증 끝에 증명이 인정됐지만, 그는 필즈상과 밀레니엄 상금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해결된 유일한 밀레니엄 문제입니다.
증명 보조기가 증명 전체를 검사하다.
곤티에는 증명 보조기 Coq로 4색 정리의 증명 전체를 컴퓨터가 한 단계씩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썼습니다. 컴퓨터 증명에 대한 30년 묵은 의심에 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무명 수학자의 깜짝 증명.
대학 강사로 일하던 장이탕은 차이가 7,000만 이하인 소수 쌍이 무한히 많다는 것을 증명해 수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 테렌스 타오 등이 이끈 온라인 공동 연구(Polymath)가 그 간격을 246까지 줄였습니다.
곡면의 기하학과 역학.
이란 출신의 마리암 미르자하니는 리만 곡면의 기하학과 역학에 대한 연구로 필즈상 역사상 첫 여성 수상자가 됐습니다. 그녀는 3년 뒤 40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장 빽빽하게 공을 쌓는 방법.
비아조프스카는 8차원 공간에서 구를 가장 빽빽하게 쌓는 방법을 놀랄 만큼 간결하게 증명했고, 곧 동료들과 24차원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녀는 2022년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최전선 수학을 Lean으로 검증하다.
숄체는 자신도 확신하기 어려운 핵심 정리의 증명을 컴퓨터로 검증해달라고 공개 요청했고, Lean 커뮤니티는 1년 반 만에 이를 완료했습니다. 형식화가 오래된 정리 확인을 넘어 최신 연구에 쓰일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AI,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은메달 수준에 오르다.
구글 딥마인드의 AlphaProof와 AlphaGeometry 2는 IMO 문제를 Lean으로 형식화해 풀어 은메달 수준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여러 AI 모델이 자연어 풀이로 금메달 수준에 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