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탈레스는 자연현상을 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의 근본 물질로 설명하려 한 첫 인물로 꼽힙니다. 답은 틀렸지만, 자연에는 이해할 수 있는 원리가 있다는 질문 방식이 과학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탈레스의 물에서 중력파와 힉스 보손까지
신화 대신 하나의 근본 원리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그리스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동안 이어질 물리학의 틀을 세웁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탈레스는 자연현상을 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의 근본 물질로 설명하려 한 첫 인물로 꼽힙니다. 답은 틀렸지만, 자연에는 이해할 수 있는 원리가 있다는 질문 방식이 과학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기록상 최초의 정량적 물리 법칙.
피타고라스 학파는 현의 길이가 2:1, 3:2, 4:3처럼 간단한 정수비일 때 듣기 좋은 화음이 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연현상이 수의 관계로 표현된다는 첫 사례입니다.
세상은 쪼갤 수 없는 원자와 빈 공간으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알갱이(atomos)와 그 사이의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험적 근거는 없었지만, 2,300년 뒤 근대 원자론으로 되살아납니다.
2,000년 동안 이어진 물리학의 기본 틀.
지상은 흙, 물, 공기, 불의 4원소로, 천상은 변하지 않는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습니다. 무거운 것일수록 빨리 떨어지고, 힘이 계속 가해져야 물체가 움직이며,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찰이 있는 일상 경험과 잘 맞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물리 법칙을 수학으로 유도하고, 하늘을 기하학으로 재는 전통이 꽃핍니다. 천동설은 정교한 예측 체계로 완성됩니다.
코페르니쿠스보다 1,800년 앞선 태양 중심설.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돈다고 처음 제안했습니다. 달과 태양의 크기와 거리를 기하학으로 재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수리물리학자.
대칭인 물체는 균형을 이룬다는 단순한 공리에서 지렛대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유도했고, 같은 방식으로 부력의 원리를 증명했습니다. 경험을 모은 것이 아니라 공리에서 물리 법칙을 연역한 첫 사례입니다.
그림자 각도로 지구의 크기를 재다.
같은 날 정오에 시에네에서는 해가 우물 바닥까지 비추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림자가 진다는 사실에서, 두 도시 사이 거리와 그림자 각도로 지구 둘레를 꽤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천천히 돈다.
히파르코스는 오래된 별 관측 기록과 자신의 관측을 비교해 별들의 위치가 조금씩 일정하게 밀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구 자전축이 약 2만 6천 년 주기로 도는 세차운동입니다. 그는 최초의 체계적인 별 목록도 만들었습니다.
빛은 가장 짧은 길로 간다.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거울에 반사된 빛이 가능한 경로 중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한다는 원리로 반사 법칙을 설명했습니다. 훗날 페르마의 원리와 최소작용원리로 이어지는 씨앗입니다. 증기로 도는 장치 ‘아이올로스의 공’도 남겼습니다.
1,400년 동안 쓰인 천동설의 완성판.
주전원, 이심원, 이퀀트를 조합해 지구 중심 우주에서 행성의 위치를 상당히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광학』에서는 빛이 물과 유리에 들어갈 때 꺾이는 각도를 실험으로 측정하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것이 훨씬 빨리 떨어지지는 않는다.
알렉산드리아의 요하네스 필로포누스는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떨어뜨려도 낙하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지적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했습니다. 던져진 물체가 계속 움직이는 이유에 대한 그의 설명은 중세 임페투스 이론의 원형이 됩니다.
그리스의 문헌은 이슬람 세계에서 번역되고 실험으로 다시 검증됩니다. 중세 유럽의 학자들은 갈릴레오보다 먼저 가속 운동을 수학으로 다룹니다.
빛은 물체에서 눈으로 들어온다.
알하젠으로도 불리는 이븐 알하이삼은 빛이 눈에서 나간다는 오래된 생각을 실험으로 반박하고, 카메라 옵스큐라와 굴절, 반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통제된 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을 철저히 써서 ‘실험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두 원운동으로 직선운동을 만들다.
마라가 천문대의 나시르 알딘 알투시는 큰 원 안에서 작은 원이 굴러갈 때 작은 원 위의 한 점이 직선으로 왕복한다는 장치를 고안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이퀀트 없이 행성 운동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300년 뒤 코페르니쿠스의 책에 같은 장치가 등장합니다.
등가속도 운동의 거리를 계산하다.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의 학자들은 일정하게 가속하는 물체가 이동한 거리는 중간 시점의 속도로 등속 운동한 거리와 같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갈릴레오의 낙하 법칙보다 300년 앞선 결과입니다.
던져진 물체는 추진력을 품고 날아간다.
파리의 장 뷔리당은 던져진 물체가 손을 떠난 뒤에도 움직이는 것은 던질 때 받은 ‘임페투스’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기 저항이 없다면 임페투스가 줄지 않는다는 생각은 관성 개념의 선구입니다.
사실상 속도-시간 그래프.
니콜 오렘은 시간을 가로로, 속도를 세로로 그려 평균속도 정리를 도형의 넓이로 증명했습니다. 이동 거리가 그래프 아래 넓이라는, 적분의 핵심 아이디어를 300년 앞서 보여준 셈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을 중심에 놓고, 티코 브라헤의 정밀 관측이 ‘변하지 않는 하늘’이라는 믿음을 깨뜨립니다.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 출판된 책에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체계를 제시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완벽한 원운동을 고집해 주전원이 필요했고, 예측 정확도는 프톨레마이오스와 비슷했습니다. 혁명은 정확도가 아니라 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변하지 않는다던 하늘에 새 별이 나타나다.
티코는 1572년 갑자기 나타난 밝은 별이 달보다 훨씬 멀리 있다는 것을 보였고, 1577년 혜성도 달 너머에 있음을 측정했습니다. 망원경 없는 시대 최고 정밀도의 관측 기록은 훗날 케플러의 손에 넘어갑니다.
관측 데이터에 대한 집요함과 실험·수학의 결합이 근대 물리학을 엽니다.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이 각각 새로운 법칙을 얻습니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다.
윌리엄 길버트는 공 모양 자석으로 실험해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는 이유가 지구 자체가 자석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험에 근거한 체계적 연구의 이른 사례입니다.
8분의 오차를 무시하지 않은 결과.
티코의 화성 관측과 원 궤도 모형의 차이는 각도로 겨우 8분이었습니다. 케플러는 이를 무시하지 않고 파고들어 행성 궤도가 타원이고, 태양과 행성을 잇는 선이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를 쓸고 지나간다는 두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1619년에는 공전 주기의 제곱이 궤도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세 번째 법칙을 내놓습니다.
목성의 위성, 금성의 위상, 달의 산.
갈릴레오는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넷을 발견해 모든 것이 지구를 돌지는 않음을 보였습니다. 금성이 달처럼 차고 이지러지는 모습은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증거였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로 지동설을 옹호한 갈릴레오는 이듬해 종교재판에서 주장을 철회해야 했고, 남은 생을 가택연금 상태로 보냈습니다. 위의 말은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로 여겨집니다.
낙하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가택연금 중에 쓴 이 책에서 갈릴레오는 빗면 실험으로 낙하 운동의 법칙을 밝히고, 던진 물체가 포물선을 그린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관성과 상대성 원리(일정하게 움직이는 배 안에서는 배가 움직이는지 알 수 없다)도 제시했습니다.
공기에도 무게가 있다.
토리첼리는 수은을 채운 유리관을 거꾸로 세우면 수은 기둥이 약 76cm에서 멈추고 그 위에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진공이 실험실에 나타났습니다. 1648년 파스칼은 산 위에서 수은 기둥이 낮아진다는 것으로 기압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직선으로 계속 움직인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에서 관성 법칙을 직선운동으로 정확히 정식화하고, 우주 전체의 운동량이 보존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우주가 물질의 소용돌이로 가득하다는 그의 우주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집니다.
기체, 진자, 빛의 속도가 실험으로 측정되고, 뉴턴이 지상과 천상을 하나의 법칙으로 묶습니다. 물리학의 첫 번째 대통합입니다.
온도가 같으면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한다.
보일은 조수 훅과 함께 만든 진공 펌프로 기체 실험을 하며 압력과 부피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밝혔습니다. 기체 연구와 실험 화학의 출발점입니다.
흑사병 휴교 중의 미적분, 만유인력, 그리고 프리즘.
케임브리지가 흑사병으로 문을 닫은 1665~66년, 고향에 머문 젊은 뉴턴은 미적분을 만들고, 만유인력을 착상하고, 프리즘으로 흰빛이 여러 색의 혼합임을 보였습니다.
시간을 정확히 재고, 구심 가속도를 구하다.
하위헌스는 진자시계를 발명해 시간 측정의 정밀도를 크게 높였고, 『진자시계』에서 원운동하는 물체의 구심 가속도가 v²/r임을 밝혔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계산할 때 이 결과가 쓰입니다.
빛에도 속도가 있다.
뢰머는 목성의 위성 이오가 목성 그림자에 숨는 시각이 지구와 목성 사이 거리에 따라 늦어지거나 빨라진다는 것을 보고, 빛이 유한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사과와 달이 같은 법칙을 따른다.
운동의 세 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으로 케플러의 세 법칙, 조수, 세차운동까지 모두 유도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눴던 지상과 천상을 하나로 합친 물리학의 첫 번째 대통합입니다. 출판비는 핼리가 냈고, 역제곱 법칙의 우선권을 두고 훅과 다퉜습니다.
빛은 파동이다.
하위헌스는 『빛에 관한 논고』에서 빛을 파동으로 보고, 파면의 각 점이 새로운 파원이 된다는 원리로 반사와 굴절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뉴턴의 입자설에 밀려 100년 동안 묻힙니다.
대륙의 수학자들이 뉴턴 역학을 미분방정식과 변분원리로 다시 씁니다. 동시에 전기라는 새로운 현상이 실험실에 들어옵니다.
빛은 입자다.
전기는 흐르고, 두 종류가 있다.
스티븐 그레이는 전기가 실을 따라 멀리 전달된다는 전도 현상을 발견했고, 몇 년 뒤 뒤페는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두 종류의 전기가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지구는 적도 쪽으로 불룩하다.
대륙의 데카르트파는 멀리 떨어진 물체가 매개 없이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을 신비주의처럼 여겼습니다. 뉴턴은 지구가 적도 방향으로 불룩할 것이라 예측했고, 모페르튀이의 라플란드 원정대가 극지방 측량으로 이를 확인하면서 논쟁이 정리됐습니다. 볼테르와 샤틀레 부인은 프랑스에 뉴턴을 소개했습니다.
빠르게 흐르는 유체는 압력이 낮다.
다니엘 베르누이는 유체의 속도와 압력의 관계를 밝히고, 기체의 압력을 수많은 분자의 충돌로 설명하는 기체 운동론을 처음 제안했습니다. 같은 시기 운동의 ‘양’이 mv인지 mv²인지를 두고 수십 년 논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둘 다 맞았습니다. 각각 운동량과 운동에너지가 됩니다.
전기를 병에 담다.
물을 채운 유리병에 전기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방전시키는 장치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습니다. 최초의 축전기로, 강한 전기 실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진동하는 현을 미분방정식으로.
달랑베르는 동역학 문제를 정역학 문제로 바꾸는 원리를 내놓은 데 이어, 진동하는 현의 운동을 편미분방정식으로 쓰고 풀었습니다. 파동방정식은 이후 소리, 빛, 양자역학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F = ma를 미분방정식으로.
뉴턴은 기하학으로 증명했지만, 오일러는 운동 법칙을 오늘날과 같은 미분방정식 형태로 썼습니다. 강체의 회전과 유체의 운동 방정식도 그가 만들었습니다.
번개는 전기다.
프랭클린은 폭풍 속에 연을 띄우는 실험으로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양전하와 음전하라는 개념과 전하가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하 보존을 제시했고, 피뢰침을 발명했습니다.
얼음이 녹는 동안 온도는 오르지 않는다.
조지프 블랙은 얼음이 녹거나 물이 끓을 때 열을 받아도 온도가 변하지 않는 ‘잠열’을 발견하고, 물질마다 데우는 데 필요한 열이 다르다는 비열 개념을 세웠습니다. 당시 열은 ‘칼로릭’이라는 무게 없는 유체로 여겨졌습니다.
전기력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쿨롱은 가는 실이 비틀리는 정도로 아주 작은 힘을 재는 비틀림 저울을 만들어, 두 전하 사이의 힘이 만유인력처럼 역제곱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측정했습니다.
그림 하나 없는 역학 교과서.
라그랑주는 역학 전체를 변분원리로 전개했고, 서문에서 이 책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좌표계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그의 방법은 복잡한 계를 푸는 데 강력했습니다.
지구의 무게를 달다.
캐번디시는 비틀림 저울로 실험실 안의 납 공 사이에 작용하는 아주 작은 중력을 측정했습니다. 이 결과로 중력 상수와 지구의 질량을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가설은 필요 없었습니다.”
라플라스는 행성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섭동을 계산해 태양계가 안정적임을 보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신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하자 그런 가설은 필요 없었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빛의 파동설이 부활하고, 전기와 자기가 연결되며, 열과 일이 같은 것임이 밝혀집니다. 장(field)과 에너지라는 근대 물리학의 핵심 개념이 태어납니다.
처음으로 흐르는 전류를 만들다.
볼타는 아연과 구리 원판을 소금물에 적신 천과 번갈아 쌓은 전지를 만들어 지속적인 전류를 얻었습니다. 정전기의 순간적인 방전을 넘어, 전기가 계속 흐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빛과 빛이 만나 어두워진다.
토머스 영은 두 틈을 지난 빛이 밝고 어두운 줄무늬를 만든다는 간섭 실험으로 빛이 파동임을 보였습니다. 100년간 이어진 뉴턴의 입자설에 대한 첫 강력한 반격이었습니다.
원판 그림자 한가운데의 밝은 점.
프레넬이 회절을 수학적으로 설명하자, 푸아송은 그렇다면 원판 그림자 한가운데 밝은 점이 생겨야 하니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아라고가 실제로 실험해 보니 그 점이 있었습니다. 반박이 오히려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전류가 나침반을 움직이다.
외르스테드는 강의 중 전류가 흐르는 도선 옆의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기와 자기가 연결된 순간입니다. 곧이어 앙페르가 전류끼리 힘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정량화했습니다.
모든 함수를 사인파의 합으로.
푸리에는 열이 퍼지는 방정식을 풀기 위해 함수를 사인과 코사인의 무한 합으로 나타내는 푸리에 급수를 만들었습니다. 수학에서 함수 개념 자체를 바꾼 사건이기도 하며, 오늘날 신호 처리의 기초입니다.
열기관의 효율은 두 온도로 정해진다.
사디 카르노는 열기관의 최대 효율이 엔진의 종류가 아니라 뜨거운 곳과 차가운 곳의 온도에만 달려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틀린 칼로릭 이론에 기반했는데도 결론은 맞았고, 열역학 제2법칙의 씨앗이 됩니다.
전압 = 전류 × 저항.
옴은 도선의 길이와 굵기를 바꿔 가며 전류를 측정해 전압, 전류, 저항의 단순한 관계를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독일 학계에서 무시당했습니다.
자석을 움직이면 전류가 생긴다.
패러데이는 변하는 자기장이 전류를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전기와 변압기의 원리입니다. 수학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는 공간을 채운 ‘역선’, 즉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떠올렸고, 1845년에는 자기장이 빛의 편광을 돌린다는 것을 발견해 빛과 전자기의 관계를 처음 암시했습니다.
역학을 광학처럼.
해밀턴은 빛의 경로와 입자의 운동 사이의 유비를 이용해 역학을 새롭게 정식화했습니다. 당시에는 우아한 재정식화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 형식은 100년 뒤 양자역학의 뼈대가 됩니다.
종이 위에서 찾은 행성.
천왕성 궤도의 작은 어긋남으로부터 르베리에와 애덤스가 보이지 않는 행성의 위치를 계산했고, 갈레가 바로 그 근처에서 해왕성을 발견했습니다. 뉴턴 역학의 절정이었습니다.
열과 일은 같은 것의 다른 모습이다.
1840년대 마이어, 줄, 헬름홀츠가 각자 에너지는 형태만 바뀔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줄은 추가 떨어지며 물을 젓는 장치로 일이 열로 바뀌는 양을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열역학 제1법칙입니다.
맥스웰이 전기, 자기, 빛을 하나로 묶고, 볼츠만이 열을 원자의 통계로 설명합니다. 고전물리학이 완성된 듯 보이던 세기말,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열은 저절로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가지 않는다.
클라우지우스와 켈빈이 각자 제2법칙을 정식화했고, 클라우지우스는 1865년 이를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표현했습니다. 같은 해 푸코와 피조는 빛이 물속에서 더 느리다는 것을 측정해 빛의 입자설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빛의 줄무늬로 별의 성분을 읽다.
키르히호프와 분젠은 원소마다 고유한 스펙트럼선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태양과 별의 빛만 분석해도 그곳에 어떤 원소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같은 해 르베리에는 수성 근일점의 설명할 수 없는 어긋남을 보고합니다. 이 수수께끼는 56년 뒤 일반상대성이론이 풀어냅니다.
전기, 자기, 빛은 하나다.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장 개념을 수식으로 옮기다가 변위전류 항을 추가했고, 그러자 방정식에서 전자기파가 나왔습니다. 그 속도를 계산해 보니 빛의 속도와 일치했습니다. 물리학의 두 번째 대통합입니다. 원래 20개였던 방정식은 헤비사이드가 벡터로 4개로 정리했습니다.
S = k log W.
맥스웰이 기체 분자의 속도 분포를 유도한 데 이어, 볼츠만은 엔트로피를 가능한 미시 상태의 수로 설명했습니다. 제2법칙은 절대 법칙이 아니라 압도적인 확률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원자의 실재를 부정한 마흐와 오스트발트 등의 공격 속에서 볼츠만은 평생 고립감을 겪었습니다.
수소 스펙트럼선의 숨은 규칙.
스위스의 교사 발머는 수소가 내는 빛의 파장들이 간단한 공식 하나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고, 답은 28년 뒤 보어의 원자 모형에서 나옵니다.
에테르는 없었다.
빛을 전달한다는 매질 에테르 속에서 지구가 움직이니, 빛의 속도는 방향에 따라 달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밀하게 재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피츠제럴드와 로렌츠는 움직이는 물체가 수축한다는 가설로 이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맥스웰의 예측을 실험실에서.
헤르츠는 전기 불꽃으로 전자기파를 만들고 멀리 떨어진 고리에서 검출해, 그것이 빛처럼 반사되고 굴절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는 쓸모가 없다고 했지만, 이 발견은 곧 무선통신으로 이어집니다.
손뼈가 보이는 신비한 빛.
뢴트겐은 음극선관 실험 중 종이를 뚫고 지나가는 정체불명의 복사선을 발견하고 ‘X선’이라 불렀습니다. 아내의 손뼈 사진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고, 의학에 바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첫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원소.
베크렐은 우라늄 염이 빛을 쬐지 않아도 사진 건판을 감광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898년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더 강한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찾아냈습니다.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흔들립니다.
원자보다 작은 입자.
켈빈이 말한 ‘두 개의 구름’에서 두 개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시간과 공간, 중력의 의미가 바뀌고, 원자의 세계는 확률로 기술됩니다. 불과 30년 사이의 일입니다.
에너지는 덩어리로만 주고받는다.
켈빈은 1900년 물리학의 하늘에 남은 두 구름으로 에테르 검출 실패와 흑체복사 문제를 꼽았습니다. 같은 해 플랑크는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맞추기 위해 에너지가 E = hν 단위로만 주고받아진다고 가정했습니다. 본인도 수학적 편법이라 여기며 마지못해 한 가정이었습니다.
빛은 알갱이이고, 원자는 실재한다.
아인슈타인은 빛 자체가 에너지 덩어리(광양자)라는 가설로 광전효과를 설명했습니다. 노벨상은 이 업적으로 받았습니다. 같은 해 물에 뜬 꽃가루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분자 충돌로 설명했고, 1908년 페랭의 실험으로 확인되면서 원자의 실재 논쟁이 끝났습니다.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같다.
빛의 속도가 모든 관찰자에게 같다는 가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론을 끌어냈습니다. 에테르는 필요 없어졌고, 같은 해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는 E = mc²가 나왔습니다. 1908년 민코프스키는 이를 4차원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다시 썼습니다.
원자 한가운데 작고 무거운 핵.
러더퍼드는 금박에 알파 입자를 쏘는 실험에서 일부가 거의 정반대로 튕겨 나오는 것을 보고, 원자의 질량 대부분이 중심의 아주 작은 핵에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휴지에 대포를 쐈는데 포탄이 튕겨 나온 것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전자는 정해진 궤도에만 있을 수 있다.
보어는 전자가 특정 궤도에만 머물고, 궤도를 옮길 때 그 차이만큼의 빛을 낸다는 양자 조건을 넣어 발머 공식을 설명했습니다. 왜 그런 궤도만 허용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중력은 시공간의 휘어짐이다.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자기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는 등가원리에서 출발해, 중력을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하는 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리만 기하학을 배워야 했고, 마지막에는 힐베르트와 경쟁하듯 방정식을 완성했습니다. 수성 근일점의 어긋남(100년에 43초)이 정확히 설명됐습니다.
대칭이 있는 곳에 보존 법칙이 있다.
에미 뇌터는 물리 법칙의 연속적인 대칭과 보존 법칙이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시간에 대한 대칭은 에너지 보존을, 공간에 대한 대칭은 운동량 보존을 낳습니다. 현대 물리학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결과입니다.
별빛이 태양 옆에서 휘다.
에딩턴의 관측대는 개기일식 동안 태양 근처 별들의 위치가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만큼 밀려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소식이 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아인슈타인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유명인이 됐습니다.
빛은 입자처럼, 전자는 파동처럼.
콤프턴은 X선이 전자와 당구공처럼 충돌하며 파장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 광양자를 확인했습니다. 이듬해 드브로이는 거꾸로 전자 같은 물질도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고 제안했습니다.
헬골란트 섬에서 태어난 양자역학.
꽃가루 알레르기를 피해 헬골란트 섬에 가 있던 하이젠베르크는 관측 가능한 양만으로 이론을 세웠고, 보른과 요르단이 그것이 행렬 계산임을 알아봤습니다. 같은 해 파울리는 두 전자가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배타원리를, 울렌벡과 하우트스밋은 전자의 스핀을 제안했습니다.
파동함수의 제곱은 확률이다.
슈뢰딩거는 물질파의 파동방정식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행렬역학과 전혀 달라 보였지만 곧 수학적으로 같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보른은 파동함수의 제곱이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자연의 근본 법칙에 확률이 들어온 순간입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고, 보어의 상보성과 함께 코펜하겐 해석이 형성됐습니다. 같은 해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유명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결합, 그리고 반물질.
디랙은 상대성이론을 만족하는 전자의 양자 방정식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음의 에너지를 갖는 해가 나왔습니다. 디랙은 이를 전자와 전하만 반대인 반입자로 해석했고, 1932년 앤더슨이 우주선에서 양전자를 발견했습니다.
은하들이 멀어지고 있다.
허블은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관계를 관측으로 보였습니다. 르메트르는 이미 1927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팽창하는 우주를 이론적으로 예측했습니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우주라는 그림이 끝납니다.
원자핵 속의 입자와 힘이 하나씩 밝혀지고, 핵분열의 발견은 원자폭탄으로 이어집니다. 전후에는 빛과 전자의 이론이 무한대 문제를 넘어 완성됩니다.
사라진 에너지를 가져가는 보이지 않는 입자.
베타붕괴에서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파울리는 전하가 없고 거의 반응하지 않는 새 입자가 에너지를 가져간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입자는 26년 뒤인 1956년에야 검출됩니다.
원자핵을 이루는 두 번째 입자.
채드윅은 전하가 없는 핵 입자인 중성자를 발견했습니다. 같은 해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을 힐베르트 공간 위에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세웠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질량.
츠비키는 머리털자리 은하단의 은하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눈에 보이는 질량만으로는 은하단이 흩어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베타붕괴를 일으키는 새로운 힘.
페르미는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며 전자와 중성미자를 내놓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중력, 전자기력에 이어 약한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근본 힘이 이론에 들어왔습니다.
핵력을 나르는 입자, 그리고 양자역학은 불완전한가.
유카와는 핵 속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는 힘을 중간 질량의 입자가 매개한다고 예측했습니다. 같은 해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EPR 논문을 썼습니다. 이 논쟁은 30년 뒤 벨 부등식으로 이어집니다.
우라늄 원자핵이 둘로 쪼개지다.
한과 슈트라스만은 중성자를 맞은 우라늄에서 훨씬 가벼운 바륨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고, 마이트너와 프리슈가 이것이 원자핵이 둘로 쪼개지는 핵분열이며 막대한 에너지를 낸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시카고 경기장 아래의 연쇄 반응.
페르미 팀은 시카고 대학 경기장 관중석 아래에 흑연과 우라늄을 쌓아 만든 원자로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유지되는 핵 연쇄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물리학이 전쟁의 결과를 바꾸다.
미국은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등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해 7월 첫 핵실험에 성공했고, 8월 일본에 투하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이후 핵무기의 책임과 통제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섭니다.
아주 작은 어긋남, 그리고 양자역학의 기술.
램은 수소 원자의 두 에너지 준위가 디랙 이론의 예측과 아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이 작은 어긋남이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같은 해 벨 연구소에서는 양자역학적 고체 이론을 바탕으로 트랜지스터가 발명됩니다.
무한대를 길들이다.
전자와 빛의 상호작용을 계산하면 답마다 무한대가 나왔습니다. 파인만, 슈윙거, 도모나가는 재규격화로 무한대를 처리하는 방법을 각각 만들었고, 다이슨이 세 방법이 같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QED는 지금도 소수점 아래 10자리 이상까지 실험과 일치하는, 가장 정밀하게 검증된 이론입니다.
가속기에서 새 입자가 수백 개 쏟아지고, 대칭과 게이지 이론이 그 혼란을 정리합니다. 우주배경복사가 빅뱅을 확정하고, 1970년대 중반 표준모형이 완성됩니다.
표준모형의 언어가 될 게이지 이론.
양전닝과 밀스는 전자기학의 대칭을 더 복잡한 대칭으로 확장한 게이지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쓸모없어 보였지만, 20년 뒤 모든 근본 힘을 기술하는 표준모형의 언어가 됩니다.
26년 만에 잡힌 유령 입자.
자연은 거울 대칭을 깰 수 있다.
1956년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약한 상호작용에서 거울 대칭(패리티)이 깨질 수 있다고 제안했고, 이듬해 우젠슝이 코발트-60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습니다. 같은 해 바딘, 쿠퍼, 슈리퍼는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BCS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한 방향, 한 색깔의 빛.
메이먼은 루비 결정으로 첫 레이저를 작동시켰습니다. 아인슈타인이 1917년 예측한 유도 방출을 이용한 장치로, 처음에는 ‘문제를 찾는 해결책’이라는 농담을 들었지만 지금은 통신, 의료, 제조 어디에나 쓰입니다.
입자 동물원의 질서, 질량의 기원, 얽힘의 시험대.
겔만과 츠바이크는 군론으로 수백 개의 입자를 분류하며 더 작은 구성 입자 쿼크를 제안했습니다. 같은 해 힉스, 앙글레르, 브라우트 등은 입자가 질량을 얻는 메커니즘을 제안했고, 벨은 양자 얽힘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부등식을 내놓았습니다.
안테나 잡음의 정체는 빅뱅의 잔광.
펜지어스와 윌슨은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는 안테나 잡음을 추적하다가, 그것이 우주 전체에서 고르게 오는 약 3K의 복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빅뱅의 잔광으로, 빅뱅 이론이 확정됩니다.
전자기력과 약력은 하나의 힘이다.
글래쇼의 선행 연구 위에서 와인버그와 살람은 각자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을 하나의 게이지 이론으로 통합했습니다. 맥스웰 이후의 또 다른 대통합입니다.
은하의 바깥쪽 별들이 너무 빠르다.
베라 루빈과 켄트 포드는 은하 바깥쪽의 별들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돈다는 것을 관측했습니다. 1970년대에 걸친 이 관측들로 츠비키가 제기한 암흑물질이 확고한 문제가 됩니다.
가까울수록 약해지는 강한 힘.
그로스, 윌첵, 폴리처는 쿼크 사이의 강한 힘이 가까운 거리에서는 오히려 약해진다는 점근적 자유성을 발견했습니다. 이로써 강력의 이론인 양자색역학(QCD)이 자리 잡고, 강력·약력·전자기력을 설명하는 표준모형이 1970년대 중반 완성됩니다.
블랙홀도 빛을 낸다.
호킹은 블랙홀 가장자리에 양자역학을 적용하면 블랙홀이 온도를 가지고 복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증발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열역학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난 결과입니다.
표준모형이 예측한 입자들이 하나씩 발견되고, 양자 얽힘은 실험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나 세기말에는 표준모형 밖의 신호들이 나타납니다.
거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정확한 양자화.
폰 클리칭은 강한 자기장 속 2차원 전자의 전기 저항이 자연 상수로만 정해지는 정확한 계단 모양을 이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현상은 위상수학으로 설명되며, 위상 물질 연구의 출발점이 됩니다.
양자 얽힘은 실재한다.
아스페 팀은 얽힌 광자 쌍으로 벨 부등식이 깨진다는 것을 정밀하게 보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 불렀던 양자 얽힘이 실재한다는 쪽으로 논쟁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약한 힘을 나르는 입자.
CERN의 양성자-반양성자 충돌 실험에서 전약 이론이 예측한 W 보손과 Z 보손이 발견됐습니다. 표준모형의 핵심 예측이 확인된 순간입니다.
입자 대신 진동하는 끈.
그린과 슈워츠는 끈이론에서 이론을 망가뜨리는 모순(이상)이 상쇄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중력을 포함한 모든 힘을 하나로 설명할 후보로 끈이론에 대한 관심이 폭발합니다. 지금까지 실험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쿼크, 그리고 원자들의 합창.
페르미 연구소에서 여섯 번째이자 가장 무거운 쿼크인 톱 쿼크가 발견됐습니다. 같은 해 코넬과 와이먼은 원자들을 절대영도 가까이 냉각해, 1920년대 아인슈타인과 보스가 예측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표준모형 밖에서 온 두 개의 신호.
일본의 슈퍼카미오칸데는 중성미자가 날아가며 종류를 바꾼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질량이 0이라는 표준모형의 가정과 달리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해 먼 초신성 관측으로 우주의 팽창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원인인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거대 실험들이 100년 묵은 예측들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중력과 양자의 통합,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은 이유는 여전히 남은 숙제입니다.
둘레 27km, 인류 최대의 실험 장치.
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가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지하에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충돌시킵니다.
48년 만에 맞춰진 표준모형의 마지막 조각.
LHC의 ATLAS와 CMS 실험이 힉스 보손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964년 예측 이후 48년 만이었고, 이듬해 힉스와 앙글레르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3억 년 전 블랙홀 충돌의 떨림.
LIGO가 두 블랙홀이 합쳐지며 낸 중력파를 처음으로 직접 검출했습니다(발표는 2016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지 100년 만이며, 우주를 ‘듣는’ 새로운 천문학이 열렸습니다.
위상수학이 물질의 상태를 설명하다.
사울레스, 홀데인, 코스털리츠는 물질의 위상적 상전이와 위상적 상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수학의 위상수학이 물리학의 핵심 도구가 된 사례입니다.
사건의 지평선 그림자를 보다.
양자 얽힘, 양자정보 과학의 기초가 되다.
아스페, 클라우저, 차일링거가 얽힌 광자 실험으로 벨 부등식의 위반을 보이고 양자정보 과학을 개척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35년 EPR 논쟁이 87년 만에 노벨상으로 정리됐습니다.
손에 쥘 수 있는 회로에서 나타나는 양자 현상.
클라크, 드보레, 마르티니스는 1980년대 초전도 전기 회로에서 거시적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를 보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연구는 오늘날 초전도 큐비트 양자 컴퓨터의 기반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