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사냥의 증거.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나무 창들은 수십만 년 전 것으로, 인류의 조상이 말 같은 큰 짐승을 집단으로 사냥했다는 증거입니다. 연대는 측정 방법에 따라 20만~30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나무 창에서 값싼 드론까지, 무기가 누가 싸우고 누가 다스리는지를 바꿔 온 역사
처음의 도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겨냥했습니다. 투창기와 활은 적과의 거리를 벌렸고, 농경과 정착으로 지킬 땅과 식량이 생기자 집단 사이의 조직적 폭력, 전쟁이 시작됩니다. 공격과 방어, 창과 방패의 경쟁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집단 사냥의 증거.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나무 창들은 수십만 년 전 것으로, 인류의 조상이 말 같은 큰 짐승을 집단으로 사냥했다는 증거입니다. 연대는 측정 방법에 따라 20만~30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근육의 힘을 시위에 저장하다.
남아프리카에서 수만 년 전의 화살촉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활은 근육의 힘을 천천히 저장했다가 한 번에 풀어내는 장치로, 맨손으로 다가갈 필요 없이 멀리서 공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팔을 연장한 지렛대.
창을 걸어서 던지는 막대인 투창기(아틀라틀)는 팔을 연장하는 지렛대 역할을 해 창을 훨씬 멀리, 세게 날렸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정리하기 훨씬 전에 몸으로 먼저 쓴 지렛대 원리입니다.
화살촉이 박힌 유골들.
지킬 것이 생기자 벽을 쌓다.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해서 저장한 식량과 땅이 생기자 그것을 빼앗고 지키려는 싸움이 본격화됐습니다. 예리코에는 이미 돌 성벽과 탑이 있었습니다.
청동 무기는 강했지만, 주석이 희귀해 매우 비쌌습니다. 비싼 무기와 전차를 가진 소수의 귀족과 왕의 직속 군대가 전쟁을 지배합니다. ‘비싼 무기는 귀족 전사 계급을 만든다’는 패턴의 첫 사례입니다.
비싼 금속, 귀족의 무기.
구리와 주석을 섞은 청동으로 칼, 도끼, 창촉, 투구를 만들었습니다. 주석은 구하기 어려운 희귀 금속이라 청동 무기로 무장한 전사는 소수의 귀족이었습니다.
고대의 탱크.
말을 길들이고 가볍고 튼튼한 바퀴살 바퀴를 발명하면서 말이 끄는 전차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등장했습니다. 나무에 뿔과 힘줄을 겹쳐 붙인 합성궁은 짧으면서도 강력해 전차와 말 위에서 쓰기 좋았고, 이후 2,000년 넘게 기마민족의 핵심 무기가 됩니다.
수천 대의 전차가 맞붙다.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맞붙은 이 전투에는 양측 합쳐 수천 대의 전차가 동원됐습니다. 전차와 말, 숙련된 마부와 궁수를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 전차는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전투 뒤 맺어진 평화 조약은 기록상 가장 오래된 평화 조약 중 하나입니다.
문명들이 거의 동시에 무너지다.
지중해 동부의 청동기 문명들이 거의 동시에 무너졌습니다. 기후 변화, 교역망의 붕괴, 정체불명의 ‘바다 민족’ 침입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며, 주석 교역이 끊긴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힙니다.
철광석은 어디에나 있어 청동보다 훨씬 싸게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귀족만이 아니라 평민 보병을 대규모로 무장시킬 수 있게 되면서 시민 군대와 거대한 제국이 등장합니다. 과학자가 처음 무기 개발에 동원되고, 무기보다 조직이 승패를 가르기 시작합니다.
철제 무기와 상비군의 제국.
옆 사람의 방패가 나를 지킨다.
그리스 중장보병은 방패를 겹쳐 빽빽한 밀집 대형으로 싸웠고, 이 대형에서는 옆 사람의 방패가 내 몸의 절반을 가려줬습니다. 개인의 무용보다 동료와의 협력과 규율이 중요했습니다. 자기 돈으로 장비를 산 시민들이 함께 싸우는 구조가 시민의 정치 참여, 즉 그리스 민주정의 기반이 됐다는 해석이 유명합니다.
몇 주만 훈련하면 농민도 궁수가 된다.
중국 전국시대에 정교한 청동 방아쇠로 시위를 걸어 두었다가 조준해 쏘는 쇠뇌가 널리 보급됐습니다. 활보다 훈련이 훨씬 덜 필요했습니다. 진나라는 쇠뇌 부품을 표준화해 대량생산했는데, 병마용에서 나온 방아쇠 부품들은 서로 교체할 수 있을 만큼 규격이 맞습니다. 2,000년 뒤 산업혁명의 ‘호환 가능한 부품’을 앞선 것입니다.
기술자를 모아 무기를 개발하다.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는 기술자들을 모아 거대한 석궁 형태의 투석기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동물 힘줄을 꼬아 그 비틀림 힘으로 발사하는 투석기가 발전합니다. 국가가 기술자를 모아 무기를 개발한 이른 사례입니다.
5~6미터짜리 긴 창.
필리포스 2세는 긴 창(사리사)을 쓰는 팔랑크스와 기병을 결합해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을 꺾었습니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이 군대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습니다.
로마 함선을 들어 올려 뒤집다.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포위하자 아르키메데스는 투석기와 갈고리 기중기 같은 방어 무기를 고안해 3년 가까이 버텼습니다. 도시가 함락될 때 그는 로마 병사에게 살해됐습니다. 과학자가 무기 개발에 동원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사례입니다. 같은 해 중국에서는 초원 기마 궁수를 막기 위한 만리장성 축조가 본격화됩니다.
진짜 무기는 조직이었다.
로마 군대의 칼(글라디우스), 던지는 창(필룸), 큰 방패는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무기는 직업 군인의 훈련, 병참, 공병이었습니다. 군단은 행군이 끝나는 날마다 방어 진지를 지었고, 정복지마다 도로를 깔아 군대를 빠르게 이동시켰습니다. 마리우스의 개혁으로 시민 징집병 대신 국가가 무장시키는 직업 군대가 자리 잡았다고 전해집니다.
말 위에서 몸을 고정하는 등자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퍼지고, 비잔틴은 비밀 화염 무기로 수도를 지킵니다. 그리고 중국의 연단술사들이 세계사를 바꿀 가루를 발견합니다.
말 위에서 몸을 고정하다.
발을 걸 수 있는 등자는 4세기경 중국에서 등장해 8세기경 유럽까지 전해졌습니다. 등자가 있으면 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말의 돌진력 전체를 실어 찌르는 충격 기병이 가능해집니다. 역사학자 린 화이트는 등자가 기사와 봉건제를 낳았다고 주장했는데, 너무 단순하다는 반론이 많지만 ‘무기가 사회 구조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유명한 논쟁입니다.
바다 위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
비잔틴 제국은 물 위에서도 타는 액체 화염 무기로 아랍 함대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지켜냈습니다. 국가 최고 기밀로 소수만 제조법을 알았는데, 결국 그 지식이 사라져 지금도 정확한 성분을 모릅니다.
불로장생약을 찾다가.
당나라의 연단술사들이 초석, 황, 숯을 섞은 가루가 격렬하게 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불화살과 폭죽, 10세기에는 화염을 뿜는 창(화창)으로 쓰였습니다.
값비싼 말과 갑옷을 갖춘 기사가 전장의 주역이 되고, 성이 너무 튼튼해 전쟁의 상당 부분은 포위하고 굶기는 공성전이 됩니다. 평민의 무기를 막으려는 첫 국제적 무기 통제가 시도되고, 몽골은 기동성과 흡수한 기술로 가장 큰 육상 제국을 세웁니다.
기록상 최초의 국제적인 무기 통제.
석궁은 훈련 안 된 평민도 쏠 수 있고 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 있어 귀족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무기로 여겨졌습니다. 제2차 라테란 공의회는 기독교인을 상대로 석궁과 활을 쓰지 말라고 금지했습니다. 물론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중세 최강의 공성 무기.
지렛대 한쪽 끝에 무거운 평형추를 달고, 그것이 떨어지는 힘으로 반대편에서 무거운 돌을 날려 성벽을 부쉈습니다.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매우 효율적인 장치입니다.
성벽을 여러 겹으로.
흙더미 위의 목조 요새에서 석조 성으로, 그리고 십자군 원정에서 비잔틴과 이슬람의 요새 기술을 배워 성벽을 여러 겹 두른 동심원 성으로 발전했습니다. 크라크 데 슈발리에가 대표적입니다.
기마 궁수의 속도와 흡수한 기술.
몽골은 기마 궁수의 기동성과 정교한 통신 체계로 역사상 가장 큰 육상 제국을 세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복한 중국과 페르시아의 기술자들을 흡수해 공성 무기와 화약 무기를 운용했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화약이 서쪽으로 퍼졌습니다.
금속 통에서 탄환을 쏘다.
값싼 평민 궁수와 창병이 값비싼 귀족 기사를 이기기 시작하고, 대포가 1,000년 된 성벽을 무너뜨립니다.
화약이 유럽에 도착하다.
평민 궁수가 기사를 쓰러뜨리다.
키만 한 잉글랜드 장궁은 어릴 때부터 수년간 훈련해야 쏠 수 있었고, 잉글랜드는 법으로 평민의 활쏘기 연습을 의무화했습니다. 백년전쟁의 크레시 전투와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평민 궁수들이 진흙탕에 빠진 프랑스 기사들을 화살 비로 쓰러뜨렸습니다. 기사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사건입니다.
온몸을 강철판으로.
쇠고리를 엮은 사슬 갑옷에서 출발해, 14~15세기에는 온몸을 강철판으로 감싼 판금 갑옷이 완성됐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칼과 화살로부터 거의 보호받았지만, 화약 무기 앞에서 점차 의미를 잃습니다.
거대한 대포가 1,000년 성벽을 무너뜨리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헝가리 기술자 오르반이 만든 거대한 대포로 1,000년 동안 난공불락이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높고 얇은 중세 성벽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밀집 대형이 기사의 돌격을 막다.
스위스의 장창 보병은 빽빽한 밀집 대형으로 부르고뉴 공국의 기사들을 연달아 격파했습니다. 평민 보병이 기사를 이기는 흐름이 대륙에서도 확인됐습니다.
대포와 성형 요새, 대규모 화승총 부대에는 엄청난 돈이 들었습니다. 이 비용을 감당하려면 세금을 걷는 관료제와 상비군, 중앙집권 국가가 필요했습니다. 화약이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 국가를 만들었다는 ‘군사 혁명’의 시대입니다. 동시에 포탄의 궤적이 수학과 물리학의 핵심 문제가 됩니다.
바다 위의 움직이는 요새.
배의 옆면에 대포 구멍을 뚫으면서 수십 문의 대포를 측면에 일렬로 배치한 전함이 발전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이 해군력으로 대항해시대를 열고 전 세계에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무기 기술의 격차가 그대로 세계 지배 구조가 됐습니다.
기하학으로 설계한 별 모양 요새.
대포에 대응해 이탈리아에서 낮고 두꺼우며 각진 보루가 별 모양으로 튀어나온 요새가 발전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접근해도 측면에서 사격할 수 있도록 각도를 계산해 설계했고, 화가 뒤러도 요새 설계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화승총병이 기사를 대파하다.
심지에 불을 붙여 쏘는 화승총은 장궁처럼 수년의 훈련이 필요 없어 몇 주만 훈련해도 누구나 갑옷 입은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파비아 전투에서 스페인 화승총병이 프랑스 기사들을 대파했습니다.
포탄은 어떻게 날아가는가.
삼차방정식의 해법으로 유명한 수학자 타르탈리아가 『새로운 과학』에서 포탄의 궤적을 다뤘습니다. 1638년 갈릴레오가 포물선 궤적을 증명합니다. 근대 과학의 상당 부분이 대포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다네가시마에 도착한 총.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에 화승총이 전해졌고, 일본은 곧 이를 대량으로 생산했습니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대량의 조총 부대로 기마대를 격파했다고 전해집니다.
포격전이 해전을 바꾸다.
스페인 무적함대는 잉글랜드 함대의 장거리 포격과 폭풍에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습니다. 배를 붙여 병사들이 올라타 싸우던 해전이 대포로 원거리에서 싸우는 해전으로 바뀌어 가는 전환점입니다.
줄을 맞춰 순서대로 쏘고 재장전하다.
네덜란드의 마우리츠 공은 병사들이 줄지어 차례로 쏘고 뒤로 빠져 재장전하는 일제 사격 훈련을 체계화했습니다. 1631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는 가벼운 야포를 보병과 함께 기동시켜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오스만, 사파비, 무굴 제국도 화약 무기로 거대한 중앙집권 제국을 세워 ‘화약 제국’이라 불립니다.
총병이 창병을 대신하다.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수발총이 신뢰성과 장전 속도를 높였고, 총구 끝에 칼을 꽂는 소켓 총검이 생기면서 총병이 창병 역할까지 겸하게 돼 창병이 사라졌습니다. 이 머스킷과 총검 조합이 150년 넘게 유럽 보병의 표준이 됩니다.
무기 부품을 표준화하는 생산 방식이 현대 제조업의 출발점이 되고, 프랑스 혁명은 모든 국민을 군인으로 만듭니다. 소총의 사거리가 갑자기 몇 배로 늘어납니다.
대포를 표준 규격으로.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되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모든 성인 남성을 징집하는 국민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왕의 직업군인끼리의 싸움이던 전쟁이 국가 전체가 동원되는 전쟁으로 바뀌는 출발점이며, 나폴레옹의 대군이 여기서 나옵니다.
어느 총에나 끼울 수 있는 부품.
미국의 국영 조병창들은 기계로 똑같은 부품을 깎아 어느 총에나 끼울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완성했습니다(‘아메리칸 시스템’). 장인이 총 한 자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맞추던 방식에서 공장 대량생산으로 바뀌었고, 이 방식이 재봉틀, 자전거, 자동차 산업으로 이어집니다. 무기 산업이 현대 제조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보병 소총의 사거리가 몇 배로.
총열 안쪽에 나선형 홈(강선)을 파면 탄환이 회전하며 멀리, 정확하게 날아가지만 장전이 느렸습니다. 미니에는 쉽게 장전되면서도 발사 때 강선에 맞물리는 탄환을 개발해 보병 소총의 유효 사거리를 갑자기 몇 배로 늘렸습니다.
철도와 전신, 강선 소총, 기관총, 철갑선이 전쟁을 바꿉니다. 장군들의 전술은 그대로인데 기술이 앞서 나가면서 대량 학살이 시작되고, 기술 격차는 그대로 식민지 정복이 됩니다. 첫 국제 전쟁법이 만들어집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돌격, 강선 소총의 사거리.
병사들은 여전히 줄을 맞춰 열린 들판을 걸어서 돌격했고, 강선 소총 앞에서 대량으로 쓰러졌습니다. 철도로 병력을 수송하고 전신으로 지휘한 첫 대규모 산업 전쟁이기도 합니다. 기술이 전술을 앞지를 때 대량 학살이 일어난다는 패턴이 여기서 시작돼 1차 세계대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손잡이로 돌리는 연사, 서로 튕겨 나가는 포탄.
개틀링이 여러 총열을 손잡이로 돌려 연사하는 기관총을 발명했습니다. 같은 해 남북전쟁에서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철갑선 두 척이 처음 맞붙었는데, 서로의 포탄이 튕겨 나가는 것을 보고 전 세계 해군은 목조 군함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작은 배가 거대한 군함을, 엎드려서 빠르게.
스스로 추진하는 어뢰가 발명되면서 작은 배와 잠수함이 거대한 군함을 침몰시킬 수 있게 됐습니다. 같은 해 프로이센은 엎드려서도 빠르게 재장전할 수 있는 후장식 소총으로 오스트리아를 압도했습니다.
광산용 폭약, 그리고 노벨상.
노벨이 불안정한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게 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습니다. 원래 광산과 터널 공사용이었지만 무기로도 쓰였고, 이를 괴로워한 노벨은 유산으로 노벨상을 만들었습니다. 1880년대에는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 무연화약이 나와 쏘는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반동으로 스스로 장전하는 총.
우리에게는 맥심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다.
수단의 옴두르만 전투에서 영국군은 사망자 수십 명을 낸 반면 수단군은 1만 명 넘게 사망했습니다. 맥심 기관총은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정복에 결정적으로 쓰였습니다.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
이전의 모든 전함을 구식으로 만든 배.
영국의 드레드노트는 거대한 주포만으로 무장하고 증기 터빈으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후 영국과 독일의 치열한 건함 경쟁이 1차 세계대전의 배경 중 하나가 됩니다.
기관총, 철조망, 대포 앞에서 돌격은 자살 행위가 되고, 전쟁은 4년간 움직이지 않는 참호의 소모전이 됩니다. 교착 상태를 깨려는 시도가 독가스, 전차, 전투기, 잠수함을 낳고, 그 참혹함이 다음 세대의 무기 금지 조약으로 이어집니다.
스위스에서 북해까지.
양측은 서부 전선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의 참호를 팠고, 전쟁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소모전이 됐습니다. 1차 대전 사상자의 대부분은 총이 아니라 포병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비료를 만든 화학자가 독가스를 지휘하다.
벨기에 이프르에서 독일군이 처음으로 염소가스를 대규모로 살포했습니다. 이를 지휘한 사람은 암모니아 합성으로 인류를 먹여 살린 화학자 프리츠 하버입니다. 같은 해 프로펠러 사이로 총알이 지나가도록 발사 타이밍을 맞추는 장치가 나와 본격적인 전투기가 등장했고,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잠수함에 격침됐습니다.
하루에 사상자 5만 7천 명.
솜 전투 첫날 하루에만 영국군은 약 5만 7천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그중 약 1만 9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참호와 철조망을 넘고 기관총을 막아낼 장갑 차량이 같은 전투에서 처음 투입됐습니다. 개발 당시 비밀을 지키려고 ‘물탱크’라 불렀던 이름이 그대로 ‘탱크’가 됐습니다.
경고 없이 상선을 침몰시키다.
독일 U보트가 영국으로 가는 상선을 경고 없이 침몰시키는 무제한 잠수함전을 재개하자 미국이 참전했습니다. 같은 해 캉브레 전투에서 전차가 대규모로 쓰이며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독가스의 기억이 만든 금지.
전파로 비행기를 보다.
도시와 민간인을 겨냥한 공습.
스페인 내전 중 독일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했습니다. 민간인을 겨냥한 공중 폭격의 상징이 되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로 기억됩니다.
2차 세계대전은 과학자와 수학자가 직접 무기를 만든 전쟁입니다. 전차와 무전기를 엮은 기동전, 항공모함, 레이더, 암호 해독, 컴퓨터, 로켓이 승패를 가르고, 마침내 인류는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됩니다.
전차, 급강하 폭격기, 그리고 무전기.
독일은 전차와 급강하 폭격기를 무전기로 엮어 적의 약한 지점을 빠르게 돌파하는 전격전 교리로 폴란드를, 이듬해 프랑스를 6주 만에 무너뜨렸습니다. 프랑스는 전차의 수와 질에서 뒤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나치가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 것을 두려워한 망명 물리학자 실라르드가 아인슈타인의 서명을 받아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레이더가 섬을 지키다.
레이더 덕분에 수적으로 열세인 영국 공군이 독일 폭격기를 미리 요격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 영국 물리학자들이 개발한 공동 마그네트론은 레이더를 소형화했고, 이 기술은 훗날 전자레인지가 됩니다.
서로를 한 번도 보지 않은 함대.
1941년 일본이 항공모함 함재기로 진주만을 공격한 데 이어, 미드웨이 해전에서 양측 함대는 서로를 직접 보지 않고 항공기로만 싸웠습니다. 드레드노트 이래 바다의 왕이던 거대 전함의 시대가 끝나고 항공모함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수학자들이 암호를 깨다.
블레츨리 파크에서 앨런 튜링을 비롯한 수학자들이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해, 대서양에서 U보트의 위치를 알아내고 수송선단을 지켰습니다. 독일 최고사령부의 다른 암호를 깨기 위해 만든 콜로서스는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 컴퓨터 중 하나입니다.
달로 간 로켓의 출발점.
독일은 탄도 미사일 V-2와 최초의 실전 제트 전투기를 개발했습니다. V-2 개발 책임자 폰 브라운은 전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폴로 계획의 로켓을 만듭니다. 인간을 달에 보낸 기술이 미사일에서 나왔습니다.
하룻밤 10만 명, 그리고 탄도표를 계산하는 컴퓨터.
양측 모두 적의 공장과 도시를 폭격해 전쟁 수행 능력과 사기를 꺾으려 했고, 3월 미국의 도쿄 대공습에서는 하룻밤에 약 1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전선과 후방, 군인과 민간인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같은 해 미국 육군이 포탄의 탄도표를 계산하려고 만든 에니악이 완성됩니다. 타르탈리아와 갈릴레오의 탄도학 문제가 400년 뒤 컴퓨터를 낳은 셈입니다.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
맨해튼 계획은 수십만 명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오펜하이머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폭탄을 설계했습니다. 7월 첫 핵실험에 성공했고,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습니다. 그해 말까지 히로시마에서 약 14만 명, 나가사키에서 약 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핵 독점의 끝, 그리고 가장 많이 만들어진 총.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핵 독점이 끝났습니다. 같은 해 소련군이 채택한 칼라시니코프의 AK-47은 단순하고 튼튼하고 싸서 진흙과 모래 속에서도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 수천만~1억 정이 퍼진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진 총이 됩니다.
더 큰 폭탄과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미사일이 만들어지지만, 양측 모두 상대를 파괴할 수 있기에 강대국끼리의 직접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대리전으로 옮겨 가고, 무기를 위해 만든 기술은 일상의 인프라가 됩니다.
원자폭탄의 수백, 수천 배.
미국이 원자폭탄보다 훨씬 강력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고, 소련이 곧 뒤따랐습니다. 1961년 소련의 ‘차르 봄바’는 히로시마 폭탄의 약 3,000배 위력으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발이었습니다.
위성을 올릴 수 있다면 탄두도 보낼 수 있다.
소련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으로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핵탄두를 지구 반대편 어디든 30분 안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은 충격에 빠졌고, 이는 우주 경쟁과 과학 교육 투자, NASA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찾을 수 없는 보복 능력.
원자력 잠수함(1954)에 이어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이 등장했습니다. 바다 깊이 숨은 잠수함은 찾아 파괴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기습을 받아도 반드시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이 보장됐습니다. 양측이 모두 이 능력을 가지면서 먼저 공격하는 쪽도 반드시 멸망하는 ‘상호확증파괴’의 균형이 생깁니다.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이 이런 핵전략 분석의 도구로 쓰였습니다.
핵전쟁 직전의 13일.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미국이 해상 봉쇄로 맞섰고, 세계는 핵전쟁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듬해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하는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공중 기동 전쟁.
강대국이 직접 싸울 수 없게 되자 전쟁은 한반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와 중남미 곳곳의 대리전으로 옮겨 갔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헬리콥터가 병력 수송과 공격의 핵심이 됐고, 반대편에서는 AK-47이 게릴라와 반군의 무기가 됐습니다.
핵보유국을 다섯으로 묶다.
기존 다섯 핵보유국 외에 핵무기가 퍼지는 것을 막는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이듬해에는 미 국방부 연구 기관이 만든 인터넷의 전신 ARPANET이 첫 메시지를 보냅니다.
수백 번 공습에도 버틴 다리를 몇 발로.
베트남 전쟁 말기 미국은 레이저 유도 폭탄으로 수백 번의 공습에도 무너지지 않던 다리를 단 몇 발로 파괴했습니다. 같은 해 미소 간 전략무기 제한 협정(SALT)과 생물무기금지협약이 맺어졌습니다.
군사 위성이 일상의 지도가 되다.
항로를 벗어난 민간 여객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되는 사건 이후, 미국은 군용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 GPS를 민간에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00년 정확도 제한이 해제되면서 GPS는 지금 스마트폰 지도의 기반이 됐습니다.
한 종류의 핵무기를 통째로 없애다.
TV로 생중계된 스마트 폭탄.
‘스마트 폭탄’이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하는 영상이 TV로 생중계됐고,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가 실전에 투입됐습니다. 같은 해 미소 간 전략무기 감축 조약(START)이 맺어지고 소련이 해체되며 냉전이 끝났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압도적인 정밀 타격 능력이 전쟁의 모습을 바꿉니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값싼 급조폭발물과 게릴라가 최강의 군대를 괴롭히고, 무기를 막는 방패인 미사일 방어와 군비 통제의 틀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시민 사회가 만든 조약.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간인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대인지뢰를 금지하는 오타와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국제 시민 운동이 주도한 조약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앞서 1993년에는 화학무기금지협약이 맺어졌습니다.
지상군 없이 공습만으로.
나토는 78일간의 공습만으로 유고슬라비아군을 코소보에서 철수시켰습니다. 위성 신호로 목표를 찾아가는 값싼 GPS 유도 키트(JDAM)를 단 폭탄과 스텔스 폭격기 B-2가 이 전쟁에서 처음 실전에 쓰였습니다. 날씨와 관계없이 쓸 수 있는 정밀 폭탄이 대량으로 쓰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화면을 보며.
미국은 무장한 무인기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예멘 등에서 표적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조종사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본토의 기지에서 화면을 보며 공격합니다. 활이 처음 만든 ‘거리 두기’가 극단에 이르렀습니다.
미사일 방어를 묶어 두던 조약이 사라지다.
냉전 시기 미소는 미사일 방어망이 상호확증파괴의 균형을 깨지 않도록 방어망 자체를 제한하는 조약(1972)을 맺었습니다. 미국은 2002년 이 조약에서 탈퇴하고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에 나섰고, 러시아는 방어망을 뚫을 새로운 미사일 개발로 맞섰습니다.
최강의 군대를 괴롭힌 값싼 폭탄.
미국은 정밀 타격과 빠른 기동으로 3주 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저항 세력의 길가 폭탄, 즉 급조폭발물이 미군 사상자의 가장 큰 원인이 됐고, 미국은 바닥이 V자 형태로 폭발을 흘려보내는 지뢰 방호 차량(MRAP)을 급히 대량 투입했습니다. 첨단 무기로 이긴 전쟁이 값싼 무기의 소모전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주가 전장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자국 위성을 미사일로 파괴하는 실험을 했고, 2021년 러시아가 뒤따랐습니다. 수천 개의 파편이 궤도에 흩어졌습니다. 위성 통신과 GPS는 이미 현대 전쟁의 필수 인프라입니다.
한 나라 전체가 마비되다.
소련 시대 전쟁 기념물 이전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에스토니아의 정부, 은행, 언론 사이트가 대규모 사이버 공격으로 몇 주 동안 마비됐습니다. 국가 전체를 겨냥한 첫 사이버 공격으로 꼽히며, 이후 나토는 에스토니아에 사이버 방어 센터를 세웠습니다.
총성 없는 공격이 늘어납니다. 코드가 시설을 부수고, 정보와 사이버 공격과 신분을 숨긴 병력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전쟁이 등장하며, 미사일 방어가 실전에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냉전 시대의 군비 통제 조약들은 하나씩 무너집니다.
코드만으로 시설을 파괴하다.
이란 핵시설의 원심분리기를 물리적으로 망가뜨린 악성코드가 발견됐습니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컴퓨터 코드만으로 실제 시설을 파괴한 최초의 사이버 무기로 꼽힙니다.
로켓을 공중에서 요격하다.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이 처음으로 가자 지구에서 날아온 로켓을 공중에서 요격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떨어질 로켓만 골라 요격하는 단거리 방공 체계로, 이후 수천 발을 요격합니다. 다만 요격 미사일 한 발이 로켓 한 발보다 훨씬 비싸다는 비용의 비대칭 문제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표식 없는 군인, 그리고 정보전.
러시아는 부대 표식을 뗀 병력과 정보전, 사이버 공격, 현지 무장 세력 지원을 섞어 거의 총격 없이 크림반도를 병합했습니다. 선전포고와 정규전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이런 방식은 ‘하이브리드 전쟁’이라 불리게 됩니다.
핵무기 자체를 불법화하려는 시도.
유엔에서 핵무기의 개발, 보유,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조약이 채택되어 2021년 발효됐습니다. 그러나 핵보유국은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조약을 이끈 시민 단체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사상 최대 피해의 사이버 공격.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진 악성코드가 전 세계로 퍼져 해운, 제약, 물류 기업들의 시스템을 마비시켰습니다. 피해액은 1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사이버 무기는 한번 풀려나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핵 통제 체제의 약화.
미국이 1987년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에서 탈퇴하면서 조약이 종료됐습니다. 2023년 러시아는 미러 간 마지막 핵무기 감축 조약인 뉴스타트의 이행을 중단했고, 이 조약의 만료 시한은 2026년 2월이었습니다.
전장의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로 늘어나고, 수백 달러짜리 드론이 수백만 달러짜리 전차를 이기며 비용의 비대칭이 극단에 이릅니다. 극초음속 미사일과 상업 위성이 전장에 들어오고, AI가 표적을 고르는 무기를 어떻게 통제할지가 새로운 질문이 됩니다. 냉전 시대의 핵 통제 체제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드론이 전쟁의 판도를 가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에서 튀르키예제 무인기가 전차와 방공망을 잇달아 파괴하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값싼 드론이 정규군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전쟁입니다.
요격하기 어려운 궤적.
음속의 다섯 배 이상으로 날면서 비행 중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극초음속 무기 경쟁이 본격화됐습니다. 2021년 중국은 궤도에 가까운 경로로 지구를 돌아 목표에 접근하는 극초음속 활공체를 시험해 서방을 놀라게 했고, 이듬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에 썼습니다.
참호와 포탄, 그 위를 나는 수천 대의 드론.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1차 대전 같은 참호와 대량의 포탄 소모전에 21세기 기술이 뒤섞였습니다. 수백 달러짜리 소형 드론이 수백만 달러짜리 전차를 파괴하고, 정찰 드론 때문에 전선에 숨을 곳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해군이 거의 없는 우크라이나는 무인 수상정으로 흑해 함대에 큰 타격을 줬고, 극초음속 미사일이 실전에 쓰였습니다. 드론 신호를 교란하는 전자전과, 이를 피하려고 광섬유 케이블을 풀며 날아가는 드론까지 나오며 창과 방패의 경쟁이 몇 주 단위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민간 위성이 전쟁의 통신망이 되다.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의 통신망이 공격받자, 민간 기업의 저궤도 위성 인터넷 단말기 수만 대가 전선의 통신과 드론 운용을 떠받쳤습니다. 민간 기업의 기술과 결정이 전쟁의 판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습니다.
사람의 판단 없이 AI가 표적을 고른다면.
유엔 총회는 사람의 최종 판단 없이 스스로 표적을 고르고 공격하는 자율 무기 체계에 대한 첫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1139년 석궁 금지처럼, 새로운 무기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입니다.
300여 발의 드론과 미사일.
4월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300발이 넘는 드론과 순항·탄도 미사일을 한꺼번에 발사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영국 등의 다층 방공망이 대부분을 요격했지만, 그 비용은 공격 비용을 훌쩍 넘었습니다. 대량의 값싼 공격 무기와 비싼 방어 무기 사이의 비용 경쟁이 국가 간 전쟁의 핵심 문제가 됐습니다.
기계가 추천하고 사람이 승인하다.
가자 전쟁에서 AI 시스템이 방대한 감시 데이터로 공격 표적을 대량으로 추천하고, 사람은 짧은 검토 후 승인하는 방식이 쓰였다는 보도가 나와 큰 논란이 됐습니다. 앞서 2020년 리비아에서는 자율 드론이 사람의 명령 없이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유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사람의 판단이 어디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지가 실제 전장의 문제가 됐습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폭격기를 공격하다.
6월 우크라이나는 화물 트럭에 숨겨 러시아 깊숙이 반입한 소형 드론들로 멀리 떨어진 여러 공군기지의 전략 폭격기들을 공격했습니다. 값싼 무기가 국가의 가장 비싼 전략 자산을 노린 극단적인 비용의 비대칭입니다.
지하 깊숙한 시설을 노린 벙커버스터.
6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 중, 미국은 스텔스 폭격기 B-2로 지하 깊이 묻힌 이란의 핵시설에 초대형 관통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 폭탄이 실전에 쓰인 것은 처음입니다. 핵 확산을 막기 위해 무력을 쓰는 것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