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바 부시, 「As We May Think」.
전쟁 중 과학 연구를 총괄했던 부시는 책상 크기의 기계에 모든 문서를 담고, 문서와 문서를 ‘연상의 끈’으로 이어 따라가는 장치를 상상했습니다. 하이퍼텍스트의 가장 오래된 청사진입니다.
1945년의 메멕스 구상부터 오늘의 AI 검색까지
컴퓨터가 방 하나 크기이던 시절, 몇몇 사람들은 지식이 서로 연결되고 컴퓨터끼리 대화하는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버니바 부시, 「As We May Think」.
전쟁 중 과학 연구를 총괄했던 부시는 책상 크기의 기계에 모든 문서를 담고, 문서와 문서를 ‘연상의 끈’으로 이어 따라가는 장치를 상상했습니다. 하이퍼텍스트의 가장 오래된 청사진입니다.
J.C.R. 리클라이더, 전 세계 컴퓨터가 연결된 미래를 그리다.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의 리클라이더는 어디서든 컴퓨터에 접속해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나눠 쓰는 ‘은하 네트워크’를 구상했습니다. 그의 후임들이 이 구상을 ARPANET으로 실현합니다.
메시지를 잘게 쪼개 각자 길을 찾아가게.
미국의 폴 배런은 핵 공격에도 살아남는 통신망을, 영국의 도널드 데이비스는 효율적인 컴퓨터 통신망을 고민하다 각자 같은 답에 이르렀습니다. 데이터를 작은 ‘패킷’으로 나눠 보내고 도착지에서 다시 조립하는 방식입니다.
테드 넬슨, 선형적이지 않은 글.
넬슨은 독자가 링크를 따라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글을 ‘하이퍼텍스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가 평생 매달린 Xanadu 프로젝트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 이름은 웹의 HTML과 HTTP 속에 남았습니다.
인터넷의 조상이 첫 메시지를 보내다.
10월 29일, UCLA에서 스탠퍼드 연구소로 ‘LOGIN’을 보내려 했지만 ‘LO’까지 보내고 시스템이 멈췄습니다. 연말까지 네 곳의 컴퓨터가 연결됩니다.
연결된 컴퓨터가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잇는 공통 규칙이 필요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네트워크로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레이 톰린슨, 다른 컴퓨터로 메시지를 보내다.
같은 컴퓨터 안의 사용자끼리만 주고받던 메시지를 네트워크 너머로 보내면서, 사용자와 컴퓨터 이름을 구분하려고 키보드의 ‘@’를 골랐습니다. 이메일은 곧 ARPANET 트래픽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무실 안의 컴퓨터를 하나로.
빈트 서프와 밥 칸,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
서로 다른 방식의 네트워크를 하나로 이어주는 프로토콜을 설계했습니다. 어떤 네트워크든 이 규칙만 지키면 연결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인터넷(inter-network)’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수백 명에게 보낸 컴퓨터 광고 메일.
DEC의 마케터가 ARPANET 사용자 수백 명에게 신제품 소개 메일을 한꺼번에 보냈고,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물론 판매에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제별 토론 게시판의 원조.
전화선으로 대학 컴퓨터들을 이어 주제별 ‘뉴스그룹’에 글을 올리고 답하는 시스템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FAQ, 이모티콘 같은 인터넷 문화가 이곳에서 자랐습니다.
TCP/IP로의 전환과 함께 ‘인터넷’이 실제로 탄생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처음으로 보안 사고를 겪습니다.
1월 1일, ARPANET이 TCP/IP로 갈아타다.
숫자 주소 대신 이름으로.
1983년 설계된 도메인 이름 시스템(DNS)이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숫자로 된 IP 주소 대신 이름으로 컴퓨터를 찾게 됐습니다. 1985년 3월, 최초의 .com 도메인 symbolics.com이 등록됩니다.
인터넷을 마비시킨 첫 대규모 악성 프로그램.
대학원생 로버트 모리스가 퍼뜨린 웜은 의도보다 훨씬 빠르게 복제되어 당시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상당수를 느려지거나 멈추게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첫 컴퓨터 비상대응팀(CERT)이 만들어집니다.
팀 버너스리, “막연하지만 흥미롭다.”
CERN의 버너스리는 연구소 안의 흩어진 문서를 하이퍼텍스트로 연결하자는 제안서를 냈습니다. 상사는 표지에 ‘막연하지만 흥미롭다’고 적어 돌려줬습니다.
누구나 문서를 올리고 링크로 잇는 웹이 공개되고, 브라우저 전쟁과 닷컴 붐이 이어집니다. 음악과 콘텐츠의 유통 방식도 흔들립니다.
첫 웹사이트가 세상에 열리다.
버너스리는 HTML, HTTP, URL 세 가지와 첫 웹 서버·브라우저를 만들고, 8월 웹을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첫 웹사이트는 웹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페이지였습니다.
그림이 나오는 브라우저, 그리고 공짜 웹.
글과 그림을 한 화면에 보여주는 Mosaic 브라우저가 나오며 웹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해 CERN은 웹 기술을 누구나 로열티 없이 쓸 수 있게 공개했습니다.
브라우저 회사, 웹 디렉터리, 온라인 서점.
Mosaic 개발자들이 만든 Netscape Navigator가 시장을 장악했고, 스탠퍼드 대학원생들의 웹사이트 목록 Yahoo!와 제프 베이조스의 온라인 서점 Amazon이 시작됐습니다. 웹 표준을 관리하는 W3C도 이 해에 문을 열었습니다.
10일 만에 만든 언어, 그리고 Internet Explorer.
Netscape의 브렌던 아이크는 웹 페이지를 움직이게 하는 JavaScript를 열흘 만에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가 Internet Explorer를 내놓으며 ‘1차 브라우저 전쟁’이 시작되고, 암호화 통신 SSL과 경매 사이트 eBay도 등장합니다.
내용과 디자인을 나누다.
W3C가 웹 페이지의 모양을 따로 정의하는 CSS를 표준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글자 색 하나 바꾸는 데도 HTML 태그를 덕지덕지 붙여야 했습니다.
링크로 순위를 매기는 검색.
스탠퍼드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많이, 그리고 중요한 페이지로부터 링크를 받은 페이지일수록 중요하다는 PageRank로 검색 품질을 크게 높였습니다.
음악 파일을 사람끼리 직접 나누다.
대학생 숀 패닝이 만든 P2P 음악 공유 서비스는 수천만 명이 쓰며 음반 산업을 뒤흔들었고, 소송 끝에 문을 닫았습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 방식에 대한 논쟁이 이때 본격화됩니다.
닷컴 거품이 꺼진 뒤 살아남은 회사들이 웹 2.0을 엽니다. 사용자가 직접 글과 사진, 영상을 올리고, 웹 페이지는 앱처럼 움직입니다.
이름에 .com만 붙어도 오르던 주가가 무너지다.
3월 정점을 찍은 나스닥은 2년 만에 고점의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고, 수많은 인터넷 기업이 사라졌습니다. 살아남은 Amazon, eBay, Google 등은 이후 웹을 지배합니다.
누구나 편집하는 백과사전.
사람을 잇는 웹, 공짜 1GB 메일함.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한 Facebook이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열었고, 만우절에 발표된 Gmail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GB 용량으로 농담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같은 해 사용자 참여형 웹을 가리키는 ‘웹 2.0’이라는 말이 퍼집니다.
누구나 방송국, 새로고침 없는 웹.
YouTube가 영상 공유를 대중화했고, 페이지를 새로고침하지 않고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법에 ‘Ajax’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끌어서 움직이는 Google Maps가 그 대표 사례였습니다.
140자의 실시간 웹, 빌려 쓰는 서버.
짧은 글을 실시간으로 나누는 Twitter가 등장했고, 아마존은 서버와 저장 공간을 빌려주는 AWS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작은 팀도 서버 없이 전 세계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웹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만든 브라우저.
구글의 Chrome은 탭마다 따로 돌아가는 구조와 빠른 JavaScript 엔진 V8로 웹 앱의 속도를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이듬해 V8 위에서 서버를 만드는 Node.js가 나오며 JavaScript는 웹 전체의 언어가 됩니다.
웹은 브라우저를 넘어 스마트폰 앱으로 옮겨 가고, 몇몇 거대 플랫폼이 인터넷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보안과 개인정보가 큰 의제가 됩니다.
사진 한 장의 소셜, 무료 메신저.
아이폰 사진 앱으로 시작한 Instagram은 이미지 중심 소셜 미디어를 열었고, WhatsApp 같은 무료 모바일 메신저가 문자 메시지를 빠르게 대체했습니다.
화면을 컴포넌트로 조립하다.
Facebook이 공개한 React는 웹 화면을 작은 부품으로 나누고 데이터가 바뀌면 필요한 부분만 다시 그리는 방식을 대중화했습니다. 이후 웹 프론트엔드 개발의 표준 도구가 됩니다.
플러그인 없이 영상, 그래픽, 앱을.
W3C가 HTML5를 정식 표준으로 발표했습니다. 영상, 오디오, 그래픽을 Flash 같은 플러그인 없이 브라우저만으로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HTTPS를.
웹 트래픽의 주인공이 바뀌다.
브라우저에서 거의 네이티브 속도로.
주요 브라우저가 모두 WebAssembly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C++이나 Rust로 만든 프로그램을 웹에서 빠르게 돌릴 수 있게 되며 게임, 영상 편집, 디자인 도구까지 브라우저 안으로 들어옵니다.
개인정보의 주인은 사용자.
유럽연합의 일반 개인정보 보호법이 시행되며, 전 세계 웹사이트에 동의 팝업이 쏟아졌습니다. 개인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됩니다.
팬데믹으로 일상이 온라인으로 옮겨 가고, 오래된 웹 기술들이 은퇴합니다. 그리고 AI가 웹을 읽고, 요약하고, 대신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그리고 한 시대의 퇴장.
코로나19로 수업, 회의, 장보기가 한꺼번에 화상회의와 웹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해 마지막 날, 한때 웹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책임졌던 Adobe Flash가 공식 지원을 끝냈습니다.
웹의 새 전송 방식, 그리고 27년 만의 작별.
검색 대신 질문하는 웹.
11월 공개된 ChatGPT는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넘었습니다. 링크 목록을 뒤지는 대신 AI에게 묻고 답을 받는 방식이 웹 사용 습관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검색창에 들어온 대화형 AI.
마이크로소프트가 Bing에 대화형 AI를 넣으며 구글에 도전했고, 이듬해 구글은 검색 결과 맨 위에 AI 요약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클릭 없이 답을 얻게 되면서 웹사이트의 트래픽 구조가 흔들립니다.
거대 플랫폼에 문을 열라고 요구하다.
EU의 디지털 시장법(DMA)이 본격 적용되며 애플, 구글, 메타 등 ‘게이트키퍼’ 기업은 다른 앱 스토어와 브라우저를 허용하는 등 플랫폼을 개방해야 했습니다.
사람 대신 클릭하고 입력하는 AI.
AI가 직접 브라우저를 조작해 검색하고, 양식을 채우고, 예약하는 에이전트 기능이 주요 AI 서비스와 브라우저에 들어왔습니다. 웹은 사람뿐 아니라 AI를 위한 공간으로도 설계되기 시작합니다.